최근 들어 각종 병원에서 홍보용 블로그를 만든 뒤 연예인의 이름과 사진 등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례에 대한 연예인들의 소송이 유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대한 소송이다.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초상사용권)이란 개인의 초상, 성명, 음성 등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해 상업적 목적으로 침해당하지 않도록 해주는 권리를 뜻한다.
최근 가수 백지영와 남규리가 자신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인터넷에 올린 병원으로부터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대한 배상을 받게 됐다.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 정찬우 판사는 백지영과 남규리가 성형외과 병원을 운영하는 최 아무개 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 씨가 백지영 씨와 남규리 씨에게 각각 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최 씨가 운영하는 성형외과 병원의 블로그 마케팅이었다. 최 씨 병원 직원들이 병원 마케팅을 위해 활용하는 블로그에 백지영과 남규리의 사진과 이름 등을 사용한 부분이 이들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받아들여진 것.
판결문에서 정 판사는 “블로그 포스트들의 외견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후기나 감상 등을 적는 형식이지만 병원 홍보를 첨부해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며 “사진이 지속적으로 무단 사용되면 두 연예인의 광고 모델 상품성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최근 배우 장동건 등 연예인 16명이 서울 소재의 한 안과 의사 김 아무개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선 연예인들이 패소했다. 이번 소송은 장동건을 비롯해 배우 김남길, 그룹 소녀시대 등 정상급 스타 16명이 함께 했다. 이들은 김 씨가 인터넷 블로그에 허락 없이 자신들의 사진을 이용해 병원 홍보에 이용해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당해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1인당 1000만 원씩 모두 1억 6천만 원이었다.
스타들의 퍼블리시티권은 이 외에도 더 있다. 서울 강남과 서초구 일대 성형외과와 안과 등을 상대로 한 또 다른 퍼블리시티권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것. 이번에 패소한 장동건을 비롯한 16명의 연예인 소송은 한 법무법인이 사건을 전담했다. 해당 법무법인이 연예인 사진이 업로드 돼 있는 병원 블로그를 찾아낸 뒤 각각의 연예인 소속사에 연락해 소송을 권유하는, 이른바 ‘기획 소송’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젠 스타들도 로펌의 기획 소송에 동참하고 있는 것. 당시 이 법무법인은 이번에 패소한 연예인 16명을 포함해 모두 26명의 연예인이 참여해 4개 병원을 상대로 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액만 6억2000만 원에 이르는 대형 기획소송이다. 법조계에선 최근 연예인의 퍼블리시티권 관련 소송이 최소 15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2건은 원고가 소를 취하했고 1건은 조정이 성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동건 소녀시대 등 16명 건은 패소했고 백지영 남규리 건은 승소했다. 남은 10건 가량은 현재 조정에 회부됐거나 재판 진행 중이다.
장동건과 소녀시대 등 16명의 연예인 건의 패소 역시 법원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지난 13일 장동건 등 연예인 16명의 퍼블리시티권 소송에서 서울 중앙지법 민사 29부(재판장 박이규)는 “김 원장이 직접 사진을 사용한 것이 아니며 온라인 광고 대행업체가 한 일이라 김 원장에겐 사진 이용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책임 소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고 패소가 결정된 것일 뿐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이름처럼 참 어렵고 다소는 애매한 개념이다. 이로 인해 다소 머쓱한 상황도 벌어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프로골프 선수 최경주의 사례다. 과거 최경주는 우리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퍼블리시티권 소송에서 승소해 1000만 원을 배상받았다.
당시 우리은행은 ‘한국 국적 골프 선수가 세계 4대 메이저대회에서 단 1회라도 우승하면 2~6.05%의 보너스금리를 지급하고 홀인원하면 보너스 금리의 두 배를 준다’는 내용의 ‘알바트로스 정기예금’ 상품을 한시적으로 판매했다. 이에 대해 최경주의 소속사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한국 선수는 현실적으로 최경주 밖에 없으므로 우리은행이 최경주의 성명권과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내 승소한 것.
그 당시 한국 선수 가운데 메이저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최경주가 2004년 마스터스대회 3위에 오른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은행의 ‘알바트로스 정기예금’ 상품은 사실상 ‘최경주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면’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최경주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는 뜻이 된다. 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여 우리은행의 배상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결국 한국인 최초의 세계 4대 골프 메이저대회 우승자는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프로 골프 선수 양용은이 됐다. 만약 최경주가 아닌 양용은도 세계 4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면 당시 최경주의 퍼블리시티권 소송은 패소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시 상황에서 법원은 최경주의 주장이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다고 받아들여 최경주의 승소를 판결했다. 그렇지만 양용은의 PGA 챔피언십 우승이 최경주 입장에선 다소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아직까지 퍼블리시티권은 저작권법 등의 법조항에 포함돼 있지는 않다. 지난 2005년 등 국회는 여러 차례 퍼블리시티권 조항을 저작권법 개정안에 삽입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아직 이뤄지진 못했다. 그렇지만 재판에서는 인정되는 권리다. 여러 하급심 판결을 통해 판례가 형성되는 추세인 것. 이번에 백지영 남규리 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8단독 정찬우 판사 역시 “퍼블리시티권은 이미 ‘법관에 의한 법 형성 과정’을 통해 법질서에 편입됐다”며 “명시적인 입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퍼블리시티권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명시했다.
물론 더욱 적극적인 퍼블리시티권 보호를 위해서는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퍼블리시티권이 저작권법 등에 포함되면 관련 소송을 훨씬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달라지는 풍경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나이트클럽 등에서 웨이터들이 사용하는 유명인의 이름이다. 나이트클럽 웨이터들이 사용하는 가명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오십원’과 같은 사물의 명칭을 딴 가명이 더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역시 가장 흔한 가명은 연예인과 스포츠스타 등의 이름이다.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호령할 당시 나이트클럽마다 가장 잘 나가는 웨이터가 박찬호라는 이름을 사용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는 엄연한 퍼블리시티권 침해다. 퍼블리시티권이 국회의 법개정 작업을 거쳐 저작권법 등에 명시적으로 포함되면 이런 웨이터들의 유명 연예인 이름 사용도 전면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또한 법 조항에 포함되면 퍼블리시티권 역시 양도 가능한 재산권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등 해외 사례에선 이미 재산권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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