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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 유례없는 초고속 승진 ‘득일까 독일까’


입력 2013.06.29 09:31 수정 2013.06.30 12:44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필연적인 홍명보 대세론, 뒷말은 무성

‘짧은 시간-낙하산 논란’ 극복 과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홍명보 감독과 축구협회로서는 그야말로 상호 최적의 윈-윈이 된다. ⓒ 연합뉴스

'홍명보 시대'의 시작은 한국축구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홍명보 감독은 차범근·박지성 등과 함께 국제적인 인지도를 지닌,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출신이다. 특히, 한국축구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는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으로 당시 세대가 배출한 첫 국가대표팀 감독이기도 하다.

황선홍, 최용수, 윤정환 등 이미 2002 멤버 출신들 중 다수가 이미 지도자 길에 들어섰지만, 홍명보 감독만큼 각급 대표팀을 거치며 지도자로서 엘리트 코스로 승승장구한 인물은 없다.

홍명보 감독의 등장은 예정된 시나리오나 마찬가지였다. 2007년부터 대표팀이 공석일 때마다 꾸준히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준비된 차기감독'이었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주가가 급상승한 홍 감독은 최강희 전 감독이 올해 최종예선을 끝으로 지휘봉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할 때부터 일치감치 후임 감독 0순위로 거론됐다.


홍명보 대세론, 필연이었던 이유

축구협회 입장에서 홍명보 감독은 최적의 카드였다. 월드컵 예선에서의 부진과 잦은 감독교체로 인해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스타성과 리더십을 겸비한 홍명보만큼 여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카드는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런던올림픽을 통해 지도자로서도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실적을 올렸고, 선수들과 축구계의 신망도 높다.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지휘봉을 맡기기에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독 홍명보'는 온전히 축구협회가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상품이기도 하다. 홍 감독은 축구협회가 거물급 국내 지도자를 키우겠다는 목표 하에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등에 업고 수혜를 입은 케이스다.

2006 독일월드컵 코치를 시작으로 2009 U-20 월드컵 본선을 통해 처음 감독 지휘봉을 잡아 2012 런던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2년 만에 성인대표팀 감독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한국축구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고속 승진’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홍명보 감독과 축구협회로서는 그야말로 상호 최적의 윈-윈이 된다. 홍명보 감독은 위기의 한국축구를 구한 구세주로 기억되며 선수에 이어 지도자로서도 정점에 오를 수 있다.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축구협회로서도 그간의 비난 여론을 무마시키는 것은 물론 '외국인 감독에 뒤지지 않는 유능한 국내 지도자를 키워야한다'고 하던 기존의 명분을 합리화시키는 정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홍명보 선임의 불편한 진실

한국축구의 구세주로서 홍명보 감독의 '극적인 등장'을 포장하기 위해 축구협회가 보여준 무리수는 불편한 뒷맛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대책도 없이 조광래 감독을 무리하게 경질하면서 시작된 혼란은 대표팀에 의지가 없었던 최강희 감독을 '시한부 감독'으로 선임하며 정점에 달했다. 더구나 이미 최강희 감독이 취임 당시부터 최종예선 후 사퇴를 선언하며 예고된 1년 6개월의 시간동안 축구협회는 후임감독에 대해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이미 홍명보 감독이 차기 사령탑으로 내정된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실제로도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최강희 감독이 최종예선 후 사퇴를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축구협회는 사임을 받아들였고, 며칠 뒤 홍명보 감독이 차기 사령탑으로 확정됐다.

축구협회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에도 형식상 4명의 후보군을 선정하며 논의하는 모양새를 취하긴 했지만, 홍명보 감독 외에 다른 후보를 영입하거나 최소한 검토라도 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다른 후보들이 홍 감독의 화려한 등장을 위해 구색 맞추기의 들러리가 된 모양새였다.

홍명보 감독의 자질과 능력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홍명보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거나 '홍명보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주장은 축구협회의 직무유기를 미화하려는 핑계에 불과했다.

축구협회는 길게는 최강희 감독의 시한부 임기였던 지난 1년 반, 심지어 새로운 집행부가 출범한 올해 2월부터 감안해도 최소 5개월 이상 후임감독에 대한 폭넓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논의와 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동안 축구협회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홍명보 감독을 추대하는 과정 역시 이번에도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홍명보 감독의 등장은 축구협회가 '더 이상 홍명보밖에 대안이 없는' 상황을 유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를 선택한 이유도 한국축구를 위한 '최선'이라기보다, 현 시점에서 축구협회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결정'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과거 허정무 감독과 최강희 감독을 선임할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축구협회의 일 처리 방식이다. 그 부담은 온전히 홍명보 감독이 짊어져야할 몫이다.


홍명보, 낙하산 논란 극복할까

홍명보 감독은 처음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던 2009년 U-20 월드컵 때부터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진출한 팀의 지휘봉을 잡아 ‘낙하산 논란’을 초래한 바 있다. 이후 광저우아시안게임과 런던올림픽으로 이어지는 3년 장기 프로젝트를 거쳐 동메달이라는 값진 수확을 올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성인대표팀에서 월드컵 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직행한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역대 감독 중 히딩크나 아드보카트도 마찬가지 경우지만 그들은 적어도 이전에 월드컵에서 성적을 낸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성인대표팀은 고사하고 아직 클럽에서 성인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조차 전무하다. 무엇보다 올림픽 때와 달리 이번에는 불과 1년 만에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

지금은 한국축구의 레전드로서 홍명보 감독에 대한 지지와 기대가 높지만, 과거 차범근이나 허정무 감독이 그러했듯, 성적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하기 쉬운 것도 민심이다. 성인대표팀을 맡기 '아직은 이르다'와 '충분히 자격이 있다'는 엇갈린 평가 속에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는 대표팀에서도 무사히 생존할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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