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이 연예계를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 없는 활동 중단이다. 물의 연예인의 경우 어느 정도의 자숙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약 없는 사안이 바로 불법 도박이다.
최근 몇 년 새 불법 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 가운데 연예계로 돌아온 이가 거의 없다. 강병규 신정환 이성진 김용만 등이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민 MC 강호동 유재석으로 양분돼 있던 시절부터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온 이수근은 분명 최고의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인기 예능인이었다. 그렇지만 무려 3억7천만 원을 베팅해 불법 도박을 벌인 이수근은 이제 한 동안 예능계를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럼에도 KBS는 이수근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아니 KBS가 아닌 ‘해피선데이-1박2일’이 그렇다. 그만큼 이수근은 ‘1박2일’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심 멤버였다.
시즌 1부터 시즌 2까지 맹활약을 펼쳐온 이수근에 대해 ‘1박2일’은 통편집을 하지 않았다. 녹화 분량을 모두 방송하면서 대신 ‘이 프로그램은 11월 8, 9일에 녹화된 내용입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불법 도박으로 이수근이 물의를 일으키기 전에 촬영한 것이라 하는 수 없이 이수근의 얼굴이 방송에 나오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뜻이다.
물론 이수근이 불법 도박과 같은 범죄 행위에 휘말리기 전에 녹화가 이뤄진 것이라면 자막처럼 그의 방송 출연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미 범법 행위를 저질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녹화가 이뤄진 것으로 당시엔 그 사실이 대중에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이다.
자막대로라면 그 어떤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지라도 대중이 모르기만 하면 방송 활동을 해도 무방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례적인 조치다. 이수근이 출연하는 다른 방송에선 모두 그의 모습을 통편집했다. 같은 KBS 예능 프로그램인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스쳐가듯 잠시 모습을 보였을 뿐 이수근의 모습을 모두 통편집됐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이수근 출연 분량을 빼면 정상적인 방송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1박2일’은 오프닝 무대 등 멤버 전원이 함께 나오는 장면이 많다. 따라서 이수근이 나오는 장면을 모두 편집하면 제대로 된 방송이 불가능했을 수 있다. 결국 제작진은 정상적인 방송을 위해 이수근을 편집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수근을 통편집하지 않은 것이 ‘1박2일’ 제작진의 배려였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수근은 ‘1박2일’ 시즌 1 초반에만 해도 잘 적응하질 못했다. 그렇지만 차츰 ‘1박2일’에 녹아들면서 프로그램의 중심이 됐다.
강호동 하차 이후 위기의 시즌 1이 잘 마무리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멤버가 교체돼 시즌 2가 시작된 뒤에도 늘 프로그램의 중심은 이수근이었다. 게다가 해당 방송은 시즌 2 마지막 방송이기도 했다. 어차피 이수근은 시즌 3 멤버가 아닌 만큼 하차가 결정돼 있었던 터라 제작진이 시즌2 마지막 방송에 이수근의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일 수도 있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편집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보단 제작진의 배려일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MC몽의 사례 때문이다. ‘1박2일’ 멤버였던 MC 몽은 병역 기피 논란에 휘말리며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당시 MC몽은 경역 기피 논란에 대해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재판을 시작하기 전 상황임을 감안하면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서도 작어도 그 시점에 MC몽은 무죄였다. 그리고 향후 재판 결과에서도 MC몽은 무죄를 받았다.
불법 입영 연기와 관련해선 유죄를 받았지만(위계에 의한 공무 집행방해) 결정적인 사안이었던 병역 기피 관련 사안에선 무죄를 받았다.
그렇지만 MC몽은 당시 논란이 불거진 직후 하차돼 통편집 당했으며 시즌 1 마지막 방송 등 과거 회상 장면에서도 모두 편집됐다.
이수근 역시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MC몽과 달리 이미 본인이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거듭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무죄를 받을 수도 있었던 MC몽은 ‘1박2일’의 프로그램 특성에도 불구하고 통편집됐는데 이미 혐의를 시인한 이수근은 통편집을 면했다.
또한 다른 물의 연예인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에 함께 불법 도박에 연루된 붐은 MBC ‘섹션 TV 연예통산’을 대표하는 리포터다. 붐이 불법 도박에 연루된 바로 그 주 ‘섹션 TV 연예통신’은 700회 특집이었다. 게다가 700회를 기념해 역대 리포터들이 모두 출연해 방송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코너도 있었다.
700회를 기념하는 방송임을 감안하면 지난 700회 동안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리포터 붐의 분량을 모두 통편집하는 것이 제작진 입장에선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제작진은 붐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함께 불법 도박 사건에 연루돼 방송 활동을 중단하게 된 이수근과 붐은 묘하게 ‘1박2일’ 시즌2 마지막 여행 방송과 ‘섹션 TV 연예통신’ 700회 특집 방송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렇지만 불구속 기소된 이수근은 방송에 정상적으로 나왔고 베팅 금액이 적어 약식 기소로 마무리된 붐은 통편집됐다.
과연 ‘1박2일’이 관대한 것이며 ‘섹션 TV 연예통신’이 매정한 것일까, 아니면 ‘1박2일’보다는 ‘섹션 TV 연예통신’이 더 시청자에 대한 매너를 지킨 것일까.
이수근의 ‘1박2일’ 출연이 향후 물의에 휘말릴 연예인들에겐 청신호일 수 있다. KBS가 스스로 원칙을 무너트린 만큼 통편집 과정에서 형평성에서 논란이 제기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 동안 KBS는 물의 연예인의 방송 출연 금지에 대해 가장 단호한 입장을 보여 왔다.
2013년 기준 KBS 출연금지 연예인은 총 23명이다. 송영창(원조교제) 이경영(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정욱(유사수신 행위규제법 위반) 청안(납치 강도 상해 자작극) 나한일(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 주지훈(마약투약) 윤설희(마약투약) 예학영(마약투약) 오광록(마약투약) 정재진(마약투약) 곽한구(절도) 이상민(도박장 운영) 서세원(주가조작 및 횡령) 강병규(상습도박) 김성민(필로폰 투약) 크라운제이(대마초 흡연) MC몽(위계공무 집행방해) 신정환(도박 사기) 이성진(도박 사기) 김용준(뺑소니) 전창걸(대마초 흡연) 여욱환(음주운전 뺑소니) 고영욱(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등이다.
주지훈은 현재 MBC 드라마 '메디컬탑팀'에 출연하고 있는 등 KBS 출연금지 리스트에 오른 연예인 가운데 타 방송사에선 정상적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이들도 꽤 된다. 그만큼 KBS가 가장 단호했다. 그렇지만 이수근이 이런 분위기를 깼다.
이수근의 ‘1박2일’ 마지막 여행 무편집 방송을 강행한 KBS는 이제 더 이상 물의 연예인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워졌다. 이수근으로 인해 이제 KBS는 물의 연예인에게 가장 관대한 방송사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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