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기름유출, 엄밀히 말해 GS칼텍스도 피해자다

박영국 기자

입력 2014.02.06 15:14  수정 2014.02.06 16:52

<기자의 눈>선주 책임 크지만, '통제 가능한' GS칼텍스에 선보상 요구는 무리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가 4일로 닷새째로 접어든 가운데 사고가 발생한 낙포동 원유2부두에 기름띠가 여전히 눈에 띄고 있다.ⓒ연합뉴스
운전기사 A씨가 B씨의 차를 발렛 파킹하다 C씨의 집 유리창을 들이받았고, 지나가던 D씨가 유리창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D씨의 부상은 누가 보상해줘야 할까.

상식적으로 운전을 한 당사자인 A씨와 차주인 B씨 사이에서 책임 공방이 오갈 수는 있지만, 피해자인 C씨와 D씨는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 GS칼텍스 원유 2부두에서 발생한 선박-송유관 충돌사고 역시 비슷한 경우다. 사고 선박인 원유운반선 우이산호의 선주는 차주와 같은 개념이고 우이산호의 접안을 돕던 도선사는 발렛 파킹 기사, 원유부두의 주인인 GS칼텍스는 차에 들이받힌 집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름 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어민들은 부상을 입은 행인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사고의 1차 피해보상 주체로 GS칼텍스를 지목했다. GS칼텍스의 송유관에서 기름이 유출됐기 때문에 기름 유출 사고에 따른 피해 어민들에 대한 보상 주체 역시 GS칼텍스가 돼야 한다는 논리다.

GS칼텍스 입장에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차에 들이받힌 집 주인보고 행인 부상 피해까지 보상하라는 것과 다름 없다.

물론, GS칼텍스 측에서 사고 발생 후 원유 송유관의 밸브를 늦게 잠그고, 신고도 늦게 해 피해가 확산됐다는 지적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밸브 차단과 신고가 늦어진 사정이 있었다는 점은 접어두더라도) 그게 사고에 따른 책임을 모두 GS칼텍스가 덮어써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해당 선박은 GS칼텍스의 소유도 아니고, GS칼텍스와 직접 운송계약을 체결한 관계도 아니다. 사고 당시 우이산호는 원유 공급업체의 위탁을 받아 GS칼텍스로 원유를 수송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라는 발언도 어민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 기관장의 발언으로서는 부적절한 것이었지만, 내용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다.

GS칼텍스는 선박 충돌 과정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송유관 파손으로 인한 유형적 손실과 기업 이미지 악화라는 무형적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장관의 발언은 ‘약자(피해어민)’가 아닌 ‘강자(GS칼텍스)’의 편에 선 정부 관료의 모습으로 비춰졌고, 그의 발언에서 언급된 GS칼텍스까지 비난 여론의 타깃이 됐다. 가뜩이나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자신들 책임이 아니라는 식의 항변을 내놓았다가는 더 큰 불똥이 튈 상황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피해 어민들의 보상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직접 통제하기 힘든 해외 선주사보다는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GS칼텍스를 압박하는 게 쉬운 일이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선주사와 선박 운영사, 부두 운영사, 양측 보험사까지 복잡하게 얽혀 향후 법적 공방까지 이뤄져야 할 문제에서 정부가 성급하게 보상 주체를 지목해버린 것은 무리한 일이다.

GS칼텍스가 우선 어민 피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선주사에 구상권을 청구하건, 보험사로부터 받아내건 알아서 하라는 것 역시 무책임한 결정이다.

어민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지금으로서는 추산도 어려운데다, GS칼텍스가 막대한 금액을 보상했다가 후일 선주사나 보험사로부터 해당 금액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차액만큼의 손실은 고스란히 GS칼텍스가 떠안아야 한다.

GS칼텍스는 이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선보상을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며, “현재로서는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견지하고 있다.

피해자지만 가해자로 몰리고도 여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게 GS칼텍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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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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