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훈 감독이 전자랜드에서 쌓은 위상과 업적만 놓고 보면 유재학 감독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 인천 전자랜드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2013-14 KB국민카드 프로농구'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기록이 나왔다.
바로 인천 전자랜드의 창단 첫 4년 연속 플레이오프(PO) 진출이다.
전자랜드는 지난달 22일 서울 삼성전에서 4경기 남겨놓고 6강 플레이오프를 확정지었다. 6일에는 고양 오리온스를 꺾고 최소 5위를 확보했다. 전자랜드는 오는 9일 서울 SK와의 최종전 결과에 따라 4위까지 오를 수 있다.
전자랜드는 유도훈 감독이 대행을 거쳐 정식으로 지휘봉을 잡은 2010-11시즌부터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오르고 있다. 이 기간 창단 역대 최고성적인 정규리그 준우승도 한 차례 차지했고 4강에만 두 번이나 올랐다. 이제는 PO 단골손님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현재 전자랜드는 국내 선수 중에 뚜렷한 대형스타가 없다.
농구에서 강팀의 기본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특급 빅맨이나 포인트가드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 시즌을 마치고 베테랑 가드 강혁이 은퇴한 데다 최고의 클러치 슈터로 꼽히는 문태종도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려 창원 LG로 이적했다. 지난 시즌 4강에 올랐음에도 전자랜드는 올해 약체로 분류됐다.
좋게 보면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이 많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만고만한 기량에 확실한 구심점이 없었다. 시즌 초반에는 수비형 빅맨 주태수의 무릎 부상으로 인한 장기결장, 믿었던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의 슬럼프 등 악재도 겹쳤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팀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바꿨다. 주전과 벤치의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을 활용해 활발한 로테이션과 끈끈한 수비농구로 상대팀을 괴롭혔다.
전력에 대한 저평가와 의지할 수 있는 스타가 없다는 위기감은 오히려 전자랜드의 기존 토종선수들에게 책임감이라는 긍정적인 자극을 가져왔다. 전자랜드보다 선수구성상 더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안양 KGC나 원주 동부, 전주 KCC 등과 비교해도 전자랜드의 조용한 돌풍은 큰 의미를 지닌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더구나 전자랜드는 2012년부터 구단 존속 여부를 놓고 몇 차례의 고비를 넘겼다. 다른 구단 같은 적극적인 투자나 전력보강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처지였다. '좋은 성적만이 농구단을 유지 시킬 수 있는 근거'였기에 선수들은 자신과 팀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강한 동기부여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코치와 감독대행을 거쳐 올해로 전자랜드에서만 5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유도훈 감독은 전자랜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이미 전자랜드에서의 위상과 업적만 놓고 보면 역대 최장수 감독으로 꼽히던 유재학 감독(1999~2004, 현 모비스)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고비마다 과감한 용병술과 형님 리더십 등을 통해 전력을 극대화시키고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는데 성공했다. 포웰이나 로드같이 개성 강한 선수들도 규율속의 자율을 추구하는 전자랜드의 끈끈한 팀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돌이켜보면 전자랜드가 프로농구 역사에서 빛난 시간은 많지 않다. 창단 이래 우승은커녕 아직 챔피언결정전조차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팀은 전자랜드가 유일하다. 올해도 PO에 진출했지만 냉정히 말해 우승권에 가깝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자랜드는 창단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더욱 끈끈하고 저력 있는 팀으로 거듭나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스타나 자본의 힘에 기대지 않고도 농구가 왜 팀 스포츠인지를 보여줬다. 바로 전자랜드의 4년 연속 PO 진출이 높게 평가받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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