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을 고려한 '의리'일 수도 있고 자신을 키워준 구단에 대한 '책임'일 수도 있다. 최용수 감독은 지난 3일 구단을 통해 밝혔듯 다시 마음을 다잡고 FC서울과 함께 정진할 예정이다.
밖에서 봐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누군가 다가와서 연봉을 잔뜩 올려주겠다는 데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쑤 세인티가 최 감독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2년 6개월 계약 기간에 50억원은 조건 그 자체로 이미 분위기를 압도했다. 아마 시즌 중이 아니었다면 최 감독의 결정이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이번 결정을 존중하는 동시에 올 시즌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상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다만 이번 사안에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달라진 중국 축구이기 때문에 더욱 최용수 감독을 향한 구애가 심상치 않았다는 점이다. 분명 지금의 중국 진출은 예전과 달리 돈 이상의 부가적인 효과가 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축구를 국민 스포츠로 키우고 있으며 그 안에서 선수와 감독의 발전이 빠른 리그다.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중국 대표팀은 예전 '공한증'에 허덕이던 팀이 아니었다. 파괴력과 결정력은 떨어졌지만 세밀한 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미드필더를 장악하려 하는 움직임이 돋보였다.
발전의 원동력은 역시나 가장 기본적인 자국 축구 리그의 발전이었다. 중국 슈퍼리그에 속해 있는 광저우 헝다와 같은 팀은 마르첼로 리피와 파비오 칸나바로 같은 세계 축구계의 중심인물이 지휘봉을 잡았던 팀이다. 지금도 이를 비롯한 인적 네트워크가 중국 기업들의 튼튼한 지원 아래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축구계로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 특급 선수들의 중국행도 속속 성사되고 있으며 관중들이 내뿜는 축구 열기는 K리그보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중국 축구가 TV 중계 때문에 고심하는 일은 없다.
이런 모든 요소를 최용수 감독이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래서 더 "잔류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아마도 요즘 유행하는 '까방권(욕먹지 않을 권리)'이 최용수 감독에겐 한 장 생긴 듯하다.
중국 축구의 성장을 지켜보면 무서울 정도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거대한 인구와 정책 차원의 뒷받침으로 축구를 켜켜이 감싸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축구를 대하는 기조 자체가 한국 또는 일본과 무척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 주석이 축구광인 사실은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알고 있는 사안이다. 최근에는 축구개혁발전소조를 만들어 류엔둥 국무원 부총리가 조장을 맡았다. 프로야구가 중심인 우리와 일본과는 상황 자체가 다른 셈이다. 축구를 축으로 놓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중국 축구의 발전을 두고 "일부 구단만 강팀이며 외국인 선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단기성에 초점을 둔 공격적인 투자일 뿐 언젠간 위기에 봉착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몇몇 구단이 우수한 성적으로 앞서 나가면서 주는 파급 효과와 뛰어난 외국인 선수가 자국 선수들에게 주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저 안쪽에 잠재해 있는 나라다. 당장 명동에서 중국인 관광객만 만나도 그들은 첫마디로 한국말은커녕 영어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중국어를 내뱉으며 왜 알아듣지 못하느냔 표정을 짓는다.
이런 점을 따져보면 외국인 선수가 언제까지고 리그를 뒤흔들 정도로 눈 뜨고 지켜볼 일은 중국 내에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적정 수준에 다다르면 알아서 자정 작용을 할 것이고 그때 가면 외국인 선수가 가져온 이득만 고스란히 중국에 남을 게 분명하다. 실제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유소년 축구의 체계적인 교육에 힘쓰고 있다.
앞서 언급한 리피나 파비오 감독은 결코 프로 구단 지휘에만 그치지 않았다. 뿌리 깊은 유소년 축구부터 깊숙이 관여했다. 인구가 거대한 잠재력인 점을 따져보면 중국 축구의 성장은 곧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조차 미친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하면 그들은 이미 K리그를 선수 키워 파는 '셀링리그'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즌이 한창인 최용수 감독에게 장쑤 세인티가 과감하게 영입 제의를 한 것에서부터 그런 맥락을 읽을 수 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선수가 아닌 감독을 향한 영입 제안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남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K리그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하는 점이다. 유소년 축구 육성이냐, 지속적인 선수 발굴이냐, 이도 저도 아니면 진짜 셀링리그임을 인정하고 그러한 역할 모델을 찾아 흡수하는 것이냐 하는 여러 선택 사항이 있을 수 있다. 과도기적 급류가 흐르는 가운데 결정은 축구계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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