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받이 홍정호, 중국 진출까지 때려야 후련한가

데일리안 스포츠 = 임정혁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6.10.09 00:00  수정 2016.10.09 07:43

거센 비판은 경기력 수준에서 멈춰야

리그 이동 등은 직업인으로서의 선택

카타르전 이후 홍정호를 향한 비판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성난 여론의 이번 타깃은 홍정호다.

한국 축구대표팀 슈틸리케호의 지난 6일 카타르전 이후 그가 총알받이로 떠올랐다. 슈틸리케호가 기성용의 어시스트와 손흥민의 결승골로 카타르에 3-2 역전승을 거뒀지만, 홍정호는 웃을 수 없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부터 믹스드 존을 떠날 때까지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카타르전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경기였다. 그런데 여론은 이러한 특성을 잊은 듯하다. 더는 아시아 어느 국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축구계 외부에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세계 축구는 점점 더 평준화되고 있다. 그 가운데 아시아는 변화의 폭이 상당한 대륙으로 꼽힌다. 월드컵 티켓 확보는 과거처럼 당연한 일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8회 연속 월드컵 참가국이라고 해도 여전히 세계무대 16강 진출이 당연하지 않은 것과 같다.

카타르전 이후 홍정호를 향한 비판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두 번의 경고를 받고 퇴장 당했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카타르 수준의 팀과 맞붙으면서 수비수가 퇴장까지 받아야 했느냐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경기 내내 홍정호가 불안한 수비력을 보였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부족함이 있다. 슈틸리케호 전체의 문제점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슈틸리케호는 카타르전에서 경기 내내 좌우 풀백의 균형감에서 엇박자를 드러냈다. 왼쪽 풀백 홍철과 비교해 오른쪽 풀백 장현수의 기용은 물음표로 남았다. 벤치엔 심지어 고광민과 정동호가 있었다.

장현수가 '멀티 자원'이긴 해도 측면이 우선인 선수는 아니다. 원래 그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를 밀어내고 꼭 그 자리를 맡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중앙 수비수인 홍정호의 퇴장이나 수비 불안도 좌우 풀백의 공수 가담인 '도르래' 역할이 깨지면서 벌어진 것과 연관이 있다.

풀백의 움직임은 어떻게든 중앙 수비수 자리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수비와 실점이 반드시 수비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대표팀 내 다른 선수들도 공감하는 사안이자 축구계 상식이다.

크게 본다면 여기까지의 비판도 이해 가능하다. 경기 내적인 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중국화'라는 추측에 가까운 확대해석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홍정호가 독일에서의 주전 경쟁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많은 수입과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택했다는 비난이다. 선수 개인의 직업 활동을 돈을 좇는 행동으로 규정한 뒤 이를 비판하는 행위다. 이는 전혀 합당하지 않다. 직장인에게 왜 일을 하면서 연봉에만 연연하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스포츠 문화가 발전해 더는 국가대표 활동이 국위선양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이상하게 축구에서 태극마크만 달면 이처럼 직업인이 아닌 영웅이 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조금만 생각하면 축구 선수의 직업 생명이 짧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축구선수는 30대가 넘어가면서 중고참이 된다. 30대 중반쯤 되면 철저한 몸 관리가 있어야 운동장을 누빌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부터 프로에 데뷔한다는 계산을 해도 치열하게 버텨야 15년 안팎이란 걸 알 수 있다.

홍정호를 향한 비판은 경기력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그동안 선수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은퇴 후 인생과 삶을 위해 자신의 가치를 높여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이다. 이를 잊은 채 기량 발전이라는 이상적인 주장 속에 선수의 삶을 그에 끼워 넣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부에선 "중동에 가면 중동 선수처럼 뛰고 중국에 가면 중국 선수처럼 뛴다"고 말한다. 이 말 속에는 이들 무대로 간 선수들을 조롱하는 뉘앙스도 담겨있다.

하지만 그게 꼭 틀린 선택인가. 일반 직장인들도 연봉 높게 주겠다는 회사가 나타나면 쉽게 이직을 고심한다. 그와 같은 직업인의 자세로 축구 선수들을 보자면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물든 주장일까. "K리그에서 뛰면 한국 선수처럼 뛴다"는 말이 나왔을 때 이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한 가지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세계적인 시장이라는 사실이다. UN(국제연합) 가입국 수보다 FIFA(국제축구연맹) 가입국 수가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이는 곧 축구선수로서 택할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걸 뜻한다. 이영표 해설위원에 열광하는 것도 그가 선수 시절 국내 무대를 거쳐 유럽과 중동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폭넓은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홍정호를 향한 비판은 경기력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직업적 특성과 그에 따른 자유를 무시해선 안 된다. 무조건 유럽에 도전하든가 K리그에서 수준 높은 축구를 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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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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