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 설경구X임시완 멜로 누아르 '불한당'
설경구·임시완·김희원·전혜진 주연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리뷰
설경구·임시완·김희원·전혜진 주연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은 버려진 두 남자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믿음'이 어떻게 쌓이는지, 어렵사리 다진 믿음이 어떻게, 와르르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재호(설경구)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정치적 판단력으로 교도소 내 권력 싸움을 제패한다. 교도소의 대통령으로 군림한 그는 교도관들까지 쥐락펴락한다. 사회에서는 오세안무역의 실세로 활동했고, 출소 후 1인자가 되기 위해 새 판으로 짜기 시작한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그에게 한 사람이 들어온다. 까불거리는 행동, 겁 없이 미친 척 달려드는 패기를 지닌 현수(임시완)다. 내로라하는 건달도 고개를 젓게 하는 인물이다. 현수는 재호를 습격하려는 반대파 일원의 공격을 막고 재호와 친해진다.
현수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챙겨준 재호를 형처럼 믿고 따른다. 끈끈한 의리를 다진 두 사람은 출소 후 오세안무역에서 일한다.
재호는 현수를 미심쩍어하는 조직원들의 의심도 감수할 만큼 그를 믿고 챙긴다. 현수 또한 재호만 믿고 조직원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불한당'은 모든 것을 잃고 불한당이 된 남자 재호(설경구)와 더 잃을 것이 없기에 불한당이 된 남자 현수(임시완),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액션 영화다. '나의 PS 파트너'(2012)를 만든 변성현 감독이 각본·각색·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영화제 측은 지금까지 범죄 액션 영화와는 결이 다른 개성 있는 연출을 인정했다.
'불한당'은 남자 배우 투톱을 내세웠다. 교도소, 조직원, 언더커버 등 수도 없이 건드린 남자 영화의 소재를 얼마만큼 잘 버무렸냐가 관건이었다.
2일 언론에 공개된 '불한당'은 꽤 잘 빠진 범죄 액션물이었다. 변 감독은 제작 초기부터 성인들이 즐겨볼 수 있는 만화 같은 느낌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창작자가 상상한 세계관에 구현하고 싶은 이야기 구조, 그리고 화려한 구성에서 오는 영화적 재미를 추구했다.
마냥 우울하고 어두울 것 같은 범죄 액션물이 아닌, 중간중간 밝고 경쾌한 요소를 넣어 세련된 액션물을 만들어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도 짜임새 있게 담았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드는 지점에서 교묘하게 편집해 관객의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뻔하디뻔한 언더커버 소재를 살짝 비튼 감독의 솜씨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기존 범죄 액션물과 결이 다른 건 재호, 현수 두 남자의 관계를 중점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무조건 찌르고, 죽이는 피 튀기는 액션에서 벗어나 두 남자가 서로를 속이고, 믿는 과정을 통해 감정의 변화를 전달한다. 감독과 배우들이 이 영화를 누아르가 아닌 '멜로'라고 정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호와 현수는 마치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을 보는 듯하다. 서로에게 차츰 스며들다 싸우고, 실망하고, 그러다 또다시 만나고.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눌 때도 애증과 연민이 뒤엉킨 남녀 관계가 떠오른다.
"살면서 벌어지는 일은 뒤통수에서 온다. 그러니 자주 뒤를 돌아봐야 돼", "아직도 나 의심하는 거예요?" 등의 대사에선 두 사람의 묘한 감정이 묻어나 있다. 믿는 듯하면서 경계하고, 경계하면서도 오롯이 믿는 듯하는 둘의 관계가 흥미롭다.
변 감독은 "누아르보다 멜로 영화를 많이 봤다"면서 "'불한당'은 멜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누아르를 만들고 싶었다"며 "서로를 믿는 순간이 어긋나면서 파국으로 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두 남자의 감정이 쌓이고 파괴되는 과정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설경구가 재호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최근작 '서부전선'(2015), '루시드 드림'(2017) 등에서 부진한 성적을 낸 설경구는 이 영화를 통해 부진을 만회할 것으로 보인다.
설경구는 재호의 흔들리는 심리를 실감 나게 표현했다. 이제껏 선보인 적 없는 나쁜 남자도 잘 어울린다. 그는 "영화다운 영화가 나올 듯하다"며 "내가 출연한 작품 중 최고로 '스타일리시'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임시완이다. 바른 청년 이미지의 그는 거친 수컷으로 변했다. 껄렁껄렁한 모습, 액션, 슬픔을 겨누지 못하는 장면 등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맑은 눈에서 나오는 특유의 눈물이 묘하게 가슴을 건드린다.
임시완은 "이렇게 기대된 작품은 처음"이라며 "결과가 잘 나올 듯하다"고 웃었다.
병갑 역의 김희원은 악역으로 분해 존재감을 뽐내는 동시에 깨알 유머도 담당한다. 전혜진은 경찰 천팀장 역을 맡아 여배우의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아쉬운 점도 있다. 최근 한국 영화에 자주 나온 소재를 썼다는 점, 여배우의 캐릭터가 후반부에 흐려진 점 등이 그렇다. 한국 영화의 소재 고갈 문제도 단적으로 보여준다.
5월 18일 개봉. 상영시간 120분.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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