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예정된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에 전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신호등 뒤로 보이는 기아차 본사 전경.ⓒ연합뉴스
통상임금 소송 사상 최대 규모인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판결이 31일 이뤄진다. 기아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는 물론 전 산업계가 이번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의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기아차가 패소할 경우 회계감정평가 기준 3조원의 소송 비용 뿐 아니라 향후 야근·특근 등 관련 수당 상승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기아차는 상여금이 ‘고정성’ 임금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근거가 없어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이다.
기아차와 동일한 임금체계를 가진 현대자동차가 지난 2015년 통상임금 판결에서 승소한 결정적인 배경은 상여금 시행세칙에 있는 ‘2개월간 15일 미만 근무한 자에게 상여금 지급을 제외한다’는 단 한 줄의 문구였다.
당시 법원은 이 규정을 근거로 상여금이 ‘고정성’을 갖지 못한다고 판단해 회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기아차의 상여금 시행세칙에는 이같은 규정이 없다. 두 회사가 같은 방식으로 노조와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임금을 지급해 왔지만 단 한 줄의 문구 때문에 두 회사의 운명이 엇갈린 것이다.
재판부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과거 소급분까지 모두 지급하도록 할 경우 기아차는 큰 타격을 입는다.
회사측은 과거 소급분만 계산한 소송비용을 회계감정평가 기준으로 최대 3조1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 2만7000여명이 2011년 청구한 과거 3년치 7220억원의 소송에 13명이 제기한 2012~2014년 소급분 및 이자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 중 재판부가 어느 선까지 인정해주느냐에 따라 회사측이 내야 할 금액도 달라진다.
1심 판결이기 때문에 해당 금액을 바로 지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계처리상으로는 곧바로 3분기에 충당금으로 반영해야 한다.
기아차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7868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44.0%나 급감했다. 하반기에도 중국 사드 사태 영향 지속과 미국의 자동차 수요 감소 등 어려운 경영여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크게 나아지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3조원 이상의 통상임금 소송비용이 반영될 경우 연간 적자가 불가피하다. 2007년 이후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소송비용 부담으로 기아차의 재무상황이 악화될 경우 3000여개 부품업체들까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부품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기아차가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3조원 이상의 우발적 채부가 발생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놓이면서 협력부품업체 대금결제 등 현금흐름에 즉시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기아차에 대금지급 의존도가 높은 영세 부품협력업체들은 자금회수에 지장이 발생하며, 즉각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부품협력업체는 존폐 위기상황이 초래될 위험성이 있다고 조합은 지적했다.
기아차의 1차 협력부품업체는 334개사이며, 2~3차 협력사까지 확대하면 3000여개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기아차의 국내 매출액 31조6419억원 중 1차 협력사에 지급되는 부품 납품액은 16조7721억원으로 비중이 53%에 달한다.
다만 재판부가 ‘신의칙’을 인정해주면 과거 소급분은 면제받을 수 있다. 신의칙이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지칭하는 것으로, 법률관계 당사자는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법률상 대원칙이다.
회사측은 우리나라 임금체계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30여년간 관례였으며, 그동안의 노사 협상도 이를 전제로 진행돼 왔음에도 불구,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을 근거로 약정한 바 없던 금액을 달라는 것은 신의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또한 3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지급할 경우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도 신의칙 적용의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법원은 최근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 재심에서 신의칙을 인정해 통상임금 소급 지급이 불필요하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그동안 관련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기업별로, 상·하급심별로 상이한 사례가 많아 결과를 장담하긴 힘들다.
신의칙을 인정받아 과거 소급분을 면제받을 수 있을지 여부와 별개로 일단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기아차는 당장 공장 가동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이는 현대차까지 포함한 현대차그룹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작업 방식과 임금 체계가 사실상 동일한 상황에서 기아차 근로자에게만 야근비용을 현행 대비 50% 더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현대차 근로자들의 반발 가능성이 높고, 다른 완성차 업체들까지 파장이 미칠 수도 있다. 자동차 업계 전체가 분란에 휩싸일 만한 사안이다.
이번 판결이 다른 기업들의 통상임금 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3년부터 지난 6월말 기준 115개 사업장(100인 이상)에서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과거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포함될 경우 산업계에서 38조원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치권에서도 기아차 통상임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장병완(국민의당)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8일 산중위 전체회의에서 “통상임금은 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라며 “통상임금의 부담으로 완성차 및 부품사에서 2만3000명의 일자리 감소가 우려되고 재계는 38조원의 비용부담이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은 국내 전 산업계를 뒤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인데, 겨우 문구 한 줄(상여금의 고정성 제외 규정)의 유무로 결정된다는 건 난센스”라며 “법원의 신중한 판단을 기대하며, 정부와 정치권도 통상임금의 개념과 기준을 명확히 하는 법적 근거를 하루 빨리 마련해 더 이상의 분쟁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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