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귀향' 조정래 "위안부 문제, 죽을 때까지 알릴 것"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14일 개봉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필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14일 개봉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필요"
조정래(43) 감독은 인터뷰 도중 두 눈이 불편한지 자꾸 깜빡 거렸다. 차가운 물이 든 잔을 눈 주위에 갖다 대기도 했다.
조 감독은 지난해 320만 관객을 동원한 '귀향'을 세계 곳곳에 알리려 뛰었다.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10개국 61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1300회에 걸쳐'귀향'을 상영했다. 빡빡한 일정 탓에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몸의 반이 굳었고, 심한 안구 건조증이 생겼다. 두통에도 시달렸다. 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조 감독은 쉬지 않았다.
13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조 감독에게 물었다. 영화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건강부터 챙기는 게 우선이지 않냐고. 그러자 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너무 급해서 그랬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떠나가시는 걸 보고 미치겠더라. 장례식만 몇 번 갔는지 모르겠다. 다들 그만하라고 하지만 난 멈출 수 없다."
14일 개봉한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전작 '귀향'에 다 담지 못한 영상들에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을 더해 만든 후속작이다.
'귀향2'는 본편보다 러닝타임이 30분가량 줄었다. 본편이 진도 씻김굿으로 할머니들의 상처받은 넋을 위로했다면, 이번엔 현실에 환생한 위안부 소녀들이 모여 '아리랑'을 함께 부른다.
이번 편에선 위안부 소녀들의 가슴 아픈 피해 장면이 현실에서 환생한 소녀들 이야기와 교차된다. 중간중간 생존자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이 실린다.
지난해 '귀향' 개봉 때 이어 두 번째 만난 조 감독은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잘 울지 않는 미국인들도 '귀향'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상영회장은 그야말로 울음바다였다. 상영회가 끝나면 영화 상영 요청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미국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일본이 저지른 일이 맞느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즈 디스 리얼(Is this real)?'이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영화에 대한 질문보다는 역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죠. 미국인도 충격을 받았지만 위안부 문제를 많은 사람이 모른다는 사실에 저도 충격받았습니다. 일본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자세히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울면서 영화 티켓 값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안 받는다고 하면 관객들이 화를 낸다고. 조 감독은 관객들의 눈물이 담긴 돈을 나눔의 집에 후원했다.
'귀향'으로 얻은 수익금을 언급했더니 감독은 '수익금'이라는 말을 안 쓴다고 했다. '소녀들의 핏값'이란다.
조 감독은 2002년 나눔의집(생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후원 시설)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이후 열여섯 살에 위안부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를 받던 도중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세상에 알려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앞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귀향'은 예상 밖 흥행 돌풍을 하며 '기적'을 길어 올렸다. 영화를 가장 먼저 본 관객은 할머니들이다. 눈물을 흘린 할머니들은 "내가 겪은 고초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는 다소 자극적인 장면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조 감독도 염려한 부분이다. "최소한의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많이 고민했죠. 그래도 할머니들께서 '애썼다'며 제 손을 꼭 잡아주셨어요. 특히 영화에 담긴 부분은 증언집의 100분의 1 수준입니다. 영화에 대한 모든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많은 관객이 영화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겁니다."
조 감독이 '귀향'을 만들 당시 주변에선 '안 된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그래도 조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고,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그는 '귀향'을 속죄의 의미라고 했다. 대학교 시절 나름 학생회장도 하고, 데모도 한 그는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피하고만 싶었단다. 그러다 봉사활동을 통해 할머니들을 알게 된 후 펑펑 울었다. 죄송하다는 생각에서다.
힘든 과정을 겪어 세상에 나온 조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까지 겪은 우여곡절이 할머니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몸을 낮췄다.
영화 흥행 후 상업영화 제안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에 후속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5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5명으로 줄었다. 조 감독이 마음이 급한 이유다.
조 감독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죄가 필요하다"며 "이 문제는 끝까지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머니들이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선 안 된다'고 하셨어요. 위안부 문제는 인권이 걸린 사안입니다. '귀향'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영화예요. 지난해 열린 해외 증언회 때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갔는데 이젠 모시고 갈 수 있는 할머니들이 별로 안 계세요.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증언집 같은 영화를 만들어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싶습니다."
전편을 만들 때 이미 후속편을 생각한 조 감독은 후속편을 바라는 관객들이 많았다고 했다. "해외 상영회를 하면 질의 시간까지 합쳐서 2~3시간이 훌쩍 지나요. 영화가 주는 파급력이 정말 크더라고요. '귀향'은 영화를 뛰어넘은 '무브먼트'(Movement·움직임)이라고 느꼈어요."
이번 편의 엔딩 장면은 조 감독이 꼭 넣고 싶어서 새롭게 촬영했다. 위안부 소녀들이 환생해 평범한 가정의 딸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감독은 "피해자 할머니들도 평범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했다. "아직도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부모가 팔았다는 말도 있고요. 화가 나요. 근데 설령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런 여성들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그런 댓글을 보면 정말 화가 나지만 화를 참고 '영화 봐 달라'고 구걸해요. 영화를 보고 바뀌는 사람들을 봤거든요."
'귀향'의 흥행 이후 충무로에는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라 나왔다.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아이캔스피크'가 대표적이다. 김해숙·김희애 주연의 '허스토리'도 촬영을 앞두고 있고, 제작사 외유내강은 '환향'을 준비 중이다. '귀향'이 귀감이 된 셈이다.
조 감독은 "'귀향'이 위안부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뤘다면 '아이캔스피크'는 우회적으로 다뤘다"며 "두 영화 모두 많은 관객이 봐주셨으면 한다. 시간이 없다. 영화를 안 보시더라도 '귀향'이 왜 세상 밖으로 나왔는지만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는 "아내한테 죄인"이라며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분을 존경한다"고 했다.
차기작도 위안부 소재 다큐멘터리다. 조 감독은 "연말 개봉을 목표로 만들고 있고, 세계영화제에 출품하고 싶다"며 "떠나시는 할머니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 무겁다. 그래도 할머니들 곁에 있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조 감독은 개인의 삶도 포기한 채 위안부 문제 알리기에 삶을 바친 듯했다. 감독의 삶은 '나눔의 집'을 방문한 2002년을 기점으로 180도 변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거냐고.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생이 다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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