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공기관 지정절차 시작…라임‧옵티머스사태 후폭풍
금융위도 '반대 의견' 공동전선…문제는 여론‧정치권 압박
금융감독원이 정부의 관리‧감독 아래 '족쇄'를 차게 될 위기에 놓였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부실 감독 책임론에 휩싸이면서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감원은 반민반관(半民半官) 기관으로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감독업무를 수행해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내부적으로 공공기관 지정을 피할 자구책을 마련에 나서는 등 방어전에 돌입했다. 다만 현재 여론은 물론 정치권까지 압박하고 있어 공공기관 지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의 공공기관 재지정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공기관 지정 유보 조건 이행과 최근의 사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 입장에선 공공기관 지정이 '족쇄'나 다름없다. 현재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감독업무 등을 수행하는 무자본 특수법인이지만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인건비와 복리 후생비 예산 집행 현황 등을 항목별로 상세하게 공개해야 하고, 고객 만족도 조사나 경영 평가 대상이 된다. 당장 방만 경영 문제를 지적받고 예산과 직원들의 각종 복지 혜택 등을 줄이라는 정치권의 불호령이 떨어질게 뻔하다. 높은 연봉과 직원복지로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별칭도 옛말이 될 수 있다.
금감원장의 위상도 마찬가지다. 경영실적 평가 등을 바탕으로 기재부 장관이 금감원장 해임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면 옷을 벗어야 했던 금감원장의 명운이 더욱 위태로워지는 셈이다. 1999년 통합 금감원 출범 후 역대 13명의 원장 가운데 임기를 채운 경우는 단 두 명뿐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들은 공공기관 지정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표정이다. 그동안 "독립성과 자율성에 반하는 조치"라며 공공기관 지정 논의에 공개적으로 반대해온 금감원이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기재부에서) 연락이 오면 한 번 검토하도록 하겠다"며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금융위원회도 하급기관인 금감원을 떼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만큼 '공동 방어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6일 기자들과 만나 "금감원에 대한 4가지 유보조건이 지켜지는 한 공공기관 지정을 안 했으면 한다"며 "금융위는 그 조건이 지켜지는 한 금감원이 독립적으로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결국 공공기관 지정 수비론의 관건은 금감원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 자구책을 내놓으냐'와 함께 올해 기재부가 공공기관 지정을 면제해주며 내건 '4가지 조건'을 얼마나 잘 이행했느냐 여부다. 기재부가 지난 2018년 금감원 대한 공공기관 재지정을 유보하며 내건 조건은 △채용비리 근절 △공공기관 수준의 경영공시 △엄격한 경영평가 △비효율적 조직운영 해소 등이다.
금융당국은 "4가지 조건 모두 잘 지켜지고 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다만 사모펀드 사태가 정국 최대 이슈로 부상하면서 금감원이 이번 공공기관 지정 논의를 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라임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전‧현직 직원이 직접적으로 연루된 정황까지 드러나며 포화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최근 주요 경제정책조차 정치권 입맛에 따라 뒤바뀌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금감원이 어떤 방어논리를 제시하더라도 정치적 계산법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사모펀드 사태로 정치적 수세에 몰린 정부여당이 금감원에 책임론의 굴레를 씌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기재부의 판단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얘기도 나온다.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감원 내부의 비리 혐의나 금융사 부실 관리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관련 논란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감독 부실 문제를 지적 받았을 때는 물론 금감원 임직원의 채용비리 논란을 빚은 2017년에도 칼바람이 몰아닥쳤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감독기관의 독립성 보장과 제도적 통제라는 상충된 과제 사이에서 근본적 처방이 나오지 않으면 논란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엔 금감원이 공공기관 지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데, 최소한 예측 가능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