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금리 인상으로 통화량 줄이려는데
일부 지자체, 전 주민 재난지원금 지급
“물가 영향 작다해도 정책 엇박자 우려”
물가 상승을 붙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0.5%p 인상하는 ‘빅 스텝’ 추진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통화량을 줄이려는 정부 움직임과 반대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을 추진해 정책 엇박자가 우려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오는 13일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금리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종전의 0.25%p 인상이 아닌 0.5%p 올리는 ‘빅 스텝’을 가능성이 크게 점쳐진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6% 올랐고 기대인플레이션 역시 4%대에 육박하는 현실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이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밟고, 환율도 역대급 수준의 상승세를 계속한다는 점에서 빅 스텝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은이 빅 스텝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중 통화량을 낮춰 물가 상승세를 붙잡기 위해서다. 기획재정부도 지난 8일 관세액 50억원 이상, 물가가중치 0.5 이상인 국민생활 밀접품목 9개를 선정해 7개엔 무관세를 확대 적용하고 2개는 저율할당관세 물량을 늘리는 등 물가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중앙 정부 움직임과 달리 일부 지자체에서는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지방선거 이후 새로 출범한 지방 정부 가운데 제주특별자치도를 비롯해 전북 고창군, 전남 광양시, 경남 사천시, 경북 경산시 등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골목 경제 활성화와 도민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전 도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고 관련 예산을 추가경정예산안에 편성해 지난 11일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재난지원금은 1인당 10만원으로 관련 예산은 700억원이다.
전북 고창군 또한 전 군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 추석 전인 8월 하순 군민 1인당 10만원을 지급하고 가구당 10만 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3인 가구 경우 40만원, 4인 가구는 50만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예산은 82억원 정도로 예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전남 광양은 ‘4차 긴급재난생활비 지급계획’을 통해 19세 이하 100만원, 19세 초과 전 시민에게 20만원 지급을 추진 중이다. 현재 광양시의회와 논의 중인데 전체 소요 예산은 532억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남 사천시는 1인당 30만원(총예산 330억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계획하고 있으며, 경북 경산도 재난지원금 계획을 수립 중이다.
현재 추진 중인 지자체들의 주민 재난지원금 전체 규모는 2000억원 가량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금액이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통화량을 최대한 줄이려는 중앙정부 정책과 상충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칠 만큼 많은 돈이 뿌려지는 건 아니니까 물가 상승에 미칠 영향도 크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지자체에서 단체장 의지로 재난지원금을 뿌리는 것 자체를 중앙에서 통제할 수단이나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지금 물가 상황을 정말 비상상황으로 간주하고 대통령이나 부총리가 모든 정책을 동원하겠다고 강조하면서 금리도 올리고 있는데 지자체에서 재난지원금 뿌리면 정책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게 사실”이라며 “혹시라도 (이 때문에) 정부의 통화정책 설득력에 금이 가는 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은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에 따르면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이전지출 증가가 수요 측면에서 최근 물가 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지출은 재난지원금이나 기부금, 실업 수당 등 같은 생산 활동과 무관하게 대가 없이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한은은 최근 유동성(시중에 풀린 돈)이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과 유사하게 늘어났는데 정부 이전지출(재난지원금 등) 확대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유동성 증가는 중장기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소득 내 이전소득 비중은 지난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13.9%를 기록했다. 과거 물가 급등기였던 2008년(8.6%), 2011년(8.9%)과 비교하면 5%p 이상 높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소비에 영향을 직접 줄 수 있는 재난지원금 등 정부 재정지원을 중심으로 유동성이 증가했다”며 “유동성은 최근 물가 상승기 중 2008년 급등기와 유사하게 늘어나는 모습을 나타냈으나 정부의 이전지출 확대에 주로 기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