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세월호의 추억’ 못 잊나
이 상황에 촛불시위 부추기다니
미사일 광란에 ‘대북특사’ 운운
세월호참사 전에는 대형 사고의 책임을 직접적으로 대통령에게 묻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직에서 ‘파면’(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헌재의 탄핵 결정문을 읽으면서 그렇게 표현했다) 당한 후 좌파 정치세력은 ‘대통령 쫓아내기’에 맛을 들인 인상이 짙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면서 무리지어 퇴진운동이라는 것을 벌이면 현직 대통령도 몰아낼 수 있다는 집단적 확신에 추동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세월호의 추억’ 못 잊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세월호참사’덕을 안 봤다고 하기 어렵다(에둘러 말해서 이렇다). 2017년 3월 10일 헌재 결정이 나기 무섭게 팽목항으로 달려가 방명록에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쓴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이로써 대통령직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기분이 들었음 직한데 아닌가?
한문제(漢文帝)가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온 나라에 일 년 동안 옥사(獄事: 중대한 범죄를 다스림. 중대한 범죄사건)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지 물었다. 주발은 모르겠다고 했다. 일 년 동안 재정 수입과 지출에 대해 물었으나 역시 대답을 못했다.
문제가 이번엔 좌승상 진평에게 물었다. “주관하는 관리가 따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옥사 판결에 대해서는 정위(廷尉: 중국 진나라 때부터, 형벌을 맡아보던 벼슬)에게, 재정에 대해서는 치속내사(治粟內史: 전곡(錢穀)을 관장한 관리)에게 물어 보라는 것이었다.
문제가 “각기 주관하는 자가 있다면 그대가 주관하는 일은 무엇인가”라고 따졌다.
“무릇 재상이란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며 음양을 다스려 사시(四時)를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는 만물이 제때에 성장하도록 어루만져주며,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압하고 어루만지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친밀히 복종하게 하여 경대부(卿大夫)로 하여금 그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황제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사마천, 사기 진승상세가).
세월호 침몰사고는 엄청난 참사였다. 그러나 연안여객선 운항은 박 전 대통령의 소관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진보좌파는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7시간의 의혹’을 밝히라는 황당한 압박이 가해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어떤 해명도 통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반대파는 인간적으로 만신창이를 만드는 일부터 격렬히 벌였고, 언론들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 끼얹기’ 재주를 한껏 발휘했다.
이 상황에 촛불시위 부추기다니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것이 쐐기를 박은 셈이 됐지만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참사로 이미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었다. 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광화문 텐트에서 유족과 함께 동조 단식을 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턱은 수염으로 덮여(요즘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양산에서의 사진처럼) 비장감을 더했다. 결과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퍼포먼스가 되었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이태원참사를 두고 다른 계산을 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들은 다시 ‘대통령 퇴진’의 구호 아래 결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의 집회가 지난 8월부터 매주말 열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심민심이라는 단체가 가세했다. 민주당이 이들 단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언론 보도다.
이태원 사고가 난 지난달 29일 이들 단체는 윤 대통령 퇴진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서울의 경찰기동대 가용 인력 모두가 도심 집회 안전·질서 유지에 투입됐고, 이날 밤 이태원에서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전국민애도기간 중이던 5일에도 촛불행동은 기어이 집회를 강행했다. 다만 이심전심 측 제안에 따라 ‘참사 추모집회’로 명칭만 바꿨을 뿐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야당의 책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재임 중인 대통령을 밀어내려는 세력과 공조한다면 이미 정당이 아니다. 민주당은 제1야당, 그것도 원내 최대 정당으로서 역할과 책무를 다해 갈 것인지, 공당(公黨)의 지위와 위상을 버리고 거리의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운동업자’ 집단이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정조사를 하던 뭘 하든 좋은데 대통령에게 왜 신통력(神通力: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 영묘하고 불가사의한 힘이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느냐고 따지는 억지는 부리지 말 일이다. 대통령은 신이 아닐뿐더러 전제군주도 아니다. 전지전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절대 권력을 행사할 힘도 갖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의 역할과 책무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안에서 책임을 따질 일이다.
미사일 광란에 ‘대북특사’ 운운
대통령 무한 책임론을 주장하려면 직전 문재인 정부의 무한책임론도 수용해야 옳다. 북한 김정은 집단이 벌이고 있는 ‘미사일 광란’에 문재인 정부의 대책 없는 친화정책이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해도 마냥 웃어주기만 하는 상대를 어려워할 사람이나 집단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 이재명 대표 같은 사람은 ‘대북 특사’운운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평화의 사도인 양 하던 문 전 대통령이 세 번 네 번 김정은을 만나 얻어낸 결과 아닌가?
갖가지 의혹과 혐의로 검·경 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대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당 대선 주자로 공천한 정당이 민주당이다. 대선 낙선 직후 그를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해 국회에 진입토록 하고 대표로까지 떠받들고 있는 정당도 다르지 않다. 그 대표를 위해 일제히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나서서 윤석열 정부를 압박·위협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로 자처하는 민주당 의원들이다.
지금 이들은 세월호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대통령 탄핵’에 입맛을 다시고 있다. 김정은이 무슨 짓을 벌이든 알 바 없다는 태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서 비롯된 세계적 경제위기도 이들의 관심을 끄는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 7차 대유행 조짐 또한 이들의 정쟁 본능을 이겨내긴 어려울 듯하다. 그 정도가 아니다. 사망 156명, 부상 197명 등 353명의 인명피해를 낸 이태원참사를 ‘탄핵정국 재발화’의 불쏘시개로 이용하려는 욕구가 번득인다.
어떤 정치체제이든 영구적일 수가 없다. 민주주의가 보편적 정치 질서 및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미가 너무 다의적이고 형태가 너무 다양하다. 역사적으로 수없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기반이 튼실해지기는커녕 되레 위기 국면이 확산·심화되는 추세다. 마침내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잡아먹고 마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민주당이 그 선봉에 선 인상이다. 소속의원들과 유력자들은자신들의 ‘자유의지’를 극렬 지지 세력에게, 그리고 이 대표에게 봉헌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붕괴의 전형적 조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