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 두 배 가까이 늘려
일본 판타지 멜로물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역대 일본 로맨스 흥행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후 최단 기간 2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주행 중이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4일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누적 관객 수 23만 15명을 기록 중이다. 지난 달 30일 개봉해 9212명이 관람해 박스오피스 9위로 시작한 이후 입소문을 탔다. 상영관은 199개에서 412개까지 늘어났으며 개봉 2주 차 주말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올랐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여고생 마오리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고생 토루의 풋풋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 첫 공개됐다.
동명의 청춘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기승전결이 쉽게 예측되고 일본 청춘물의 클리셰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눈이 높아져 버린 다수의 한국 관객들을 잡기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이 청춘물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이유가 됐다. 정해진 결말로 가는 과정을 싱그럽고 풋풋하게 그려내 판타지 멜로에 갈증을 느꼈던 관객들의 만족감을 충족시켰다.
원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일본 특유의 감성으로 스크린에 구현한 신들과 대사들은, 영화란 매체가 가진 힘으로 여운을 길게 남긴다. 이에 일본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기꺼이 N 차 관람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기 개봉작들의 부진도 이 작품의 흥행 원동력이 됐다. 마동석 주연의 '압꾸정, 우리나라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탄생', 갓세븐 박진영 주연의 누아르 '크라스마스 캐럴'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며 관객 수가 하락했고, 이 틈을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비집고 들어왔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 7월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흥행 수익 781만 235 달러(한화 약 101억원)을 거뒀다. 국내에서도 개봉 14일 만에 20만 관객에 돌파하며, '역대 일본 로맨스 흥행작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후 최단기간 20만 돌파작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영화계에서 일본 로맨스 작품은 성공하기 힘든 구조다. 자극적이거나 강렬한 장르물,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록버스터가 극장가를 점령한 가운데, 일본 로맨스물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올해 개봉한 개봉작 총 1574편 중 로맨스 장르로 분류된 일본 영화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를 포함해 12편이었다.
현재 역대 일본 로맨스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은 2017년 개봉한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의 46만 명이다. '아바타: 물의 길', '영웅' 등 대작들의 출격으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이 기록을 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일본 로맨스가 마이너 장르가 된 현재,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선전은 다양성에 기여했다는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