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
드디어 국내 영화계에서 뮤지컬 장르를 대표할 수 있는 영화가 탄생했다. 2009년 동안 14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며 공연된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으로 옮긴 윤제균 감독. 뮤지컬 원작이 주는 웅장하고 절절한 감동을 헤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인물들의 서사나 로케이션, 배우의 표정 클로즈업을 활용해 영화적인 매력을 더했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해 공감을 끌어내는 윤제균 감독의 장기는 '영웅'에서도 빛을 발했다.
'영웅'은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은 안중근이 하얼빈 기차역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기까지의 1년을 그린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결연하게 노래하는 안중근과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통해 뮤지컬 장르라고 확실히 선언하며 나아간다.
노래 가사가 곧 대사인 뮤지컬 영화가 대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노래를 하곤 했던 탓에, 이질감과 과장돼 보였던 지점을 경계한 흔적들이 보인다. 노래로만 극 진행되거나 화면 전환 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열리는 안중근의 법정신에서 '누가 죄인인가?'를 외치는 출연진들의 군무와 앙상블은 마치 실제 뮤지컬 무대를 보는 것 같은 역동성을 부여했다.
뮤지컬 초연 당시부터 안중근 의사를 연기해온 정성화를 영화에서도 캐스팅한 건 신의 한 수다. 오랜 시간 안중근 의사를 연기해온 그였기에 보여줄 수 있는 넘버들과 감정들이 스크린을 촘촘하게 메운다. 정성화는 무대에 설 때 먼 관객까지 닿을 수 있도록 노래를 부르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감정에 더 초점을 맞췄다.
나라와 동료를 잃은 슬픔, 목숨을 걸고 나라의 적을 처단하겠다는 결연함,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형대 앞에서의 감정 등을 정성화는 표정과 눈빛, 손짓으로 만들어냈다.
설희 역의 김고은의 열연도 돋보인다. 뮤지컬보다 추가된 설희의 서사는 김고은의 처연하고 비장한 연기를 통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김고은의 새로운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마리아 여사 역의 나문희의 연기는 영화 감정선 의 클라이맥스를 담당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며 애틋한 마음이 담긴 노랫말로 잊히지 않을 여운을 선사한다. 김고은과 나문희의 넘버들은 울부짖는 울음과 흐느낌, 호흡도 숨죽여 듣게 만든다.
러닝타임 내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윤제균 감독의 고뇌와 노력의 결실이 보인다. 관객들의 마음은 뜨겁게 타오르게 만들지만, 영화는 최대한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윤제균 감독표 '영웅'의 미덕이다. 21일 개봉. 러닝타임 1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