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월드컵서 17세 나이로 세계 축구계 등장
전무후무 월드컵 3회 우승 대기록, 10번의 상징
'축구 황제' 펠레(브라질)가 세상을 떠나며 하늘의 별이 됐다. 향년 82세.
그동안 펠레를 돌봤던 딸 켈리 나시멘투는 30일(한국시각), 공식 성명을 통해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안하게 쉬세요"라고 발표했다. 펠레는 임종 직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펠레를 수식어하는 말은 단 한 가지. 바로 만인지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축구 황제’다. 그만큼 펠레의 현역 시절은 누구보다 화려했고 대단했다.
고작 15세 나이였던 1956년 브라질 명문 클럽인 산투스 FC에 입단한 펠레는 이듬해 38경기 41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단숨에 브라질 내 특급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에도 주립 리그 38경기에서 58골을 퍼부은 펠레는 득점왕과 첫 우승을 맛보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설이 시작된다. 바로 17세 나이에 참가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4경기에 출전 6골-2어시스트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기며 우승과 함께 스타덤에 올랐다.
이때 달았던 등번호 10번은 영원불멸의 가치를 지니게 됐다.
초창기 축구에서 등번호란 포지션을 알려주는 용도였다가 공격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팀의 스트라이커 또는 플레이메이커에게 등번호 10번이 주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1958년 월드컵 직전 브라질 축구협회는 등번호 제출을 잊었고 대회 관계자가 임의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새내기였던 펠레에게 10번이 덜컥 주어졌던 것.
10번을 달고 뛰었던 펠레는 세계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브라질의 에이스로 떠오른 펠레는 은퇴할 때까지 이 번호를 달았다. 그리고 등번호는 10번은 지금까지 팀의 스트라이커,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로 인식되고 있다.
1962년 월드컵까지 제패한 펠레는 명실상부 60년대를 지배하는 선수로 거듭났다. 한 시즌만 놓고 보면 펠레보다 뛰어났거나 근접했던 선수들은 많았다. 데니스 로, 지미 그리브스, 에우제비우, 보비 찰튼 등이 대표적이었으나 꾸준함에 있어서는 펠레와 비견되지 않았다.
1970년 월드컵은 펠레의 마지막 무대였다. 4년 전 잉글랜드 대회서 압도적 전력을 지녔던 브라질은 펠레가 상대팀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당하며 부상으로 쓰러졌고 결국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에 잔뜩 벼르던 상태였다.
결국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1로 물리쳤고 우승의 영광은 펠레에게 돌아갔다. 당시 펠레는 상의를 벗은 채 세리머니에 참가했는데 이때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탈리아의 수비수 로베르토 로사토는 두리번거리더니 황급히 펠레에게 뛰어가 유니폼 교환을 요구했다. 팀의 대패보다 펠레의 유니폼이 소중했고, 이후 이 유니폼은 경매 시장에 나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구 유니폼으로 팔렸다.
펠레는 1974년까지 산투스 FC에서 뛰었고 이후 미국 뉴욕 코스모스로 건너가 1977년까지 뛴 뒤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클럽 통산 721경기 출전 680골, 국가대표에서는 91경기 77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펠레는 은퇴 후 축구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샐럽으로 활동했고 조국인 브라질에서 체육부 장관을 맡는 등 하늘로 떠나기 전까지 축구와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