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해외 취업 사기 에피소드 주인공
“이런 비중은 처음…준비한 것 후회 없이 해 본 것 같다.”
다소 낯선 얼굴이었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아 뭉클함이 배가 됐다. ‘모범택시2’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재 아빠의 절절함을 연기한 배우 최원의 이야기다. 25년 차 배우로 무대, 브라운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인지도는 다소 부족했던 최원은 그래서 더 날 것 같은 모습으로 ‘모범택시’ 시리즈의 새 포문을 완벽하게 열었다.
시즌1에 이어 1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는 취업을 미끼로 청년들을 해외로 유도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해외취업사기 에피소드로 시즌2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2회에 걸쳐 소개된 이 에피소드에서 최원은 해외 취업 사기를 당해 연락이 끊긴 아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홀로 어렵게 키운 아들이 해외로 떠난 후 연락이 끊기자, 해외와 전국 곳곳을 누비는 과정을 절절하게 표현해 내며 시즌2로의 몰입을 자연스럽게 끌어낸 것이다.
그간 여러 무대와 영화, 드라마 등에 출연했지만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이에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얼굴이었으나, 오히려 이것이 캐스팅의 이유가 됐다. 마치 다큐를 방불케 하는 현실감을 원했던 제작진이 오디션 끝에 발탁한 배우가 최원이었던 것. 최원 또한 부담감은 잠시 내려두고 담백한 연기를 선보였고, 이에 현실감에 방점이 찍힌 에피소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연락을 주셨다.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셨다고 하시더라. 오디션을 보면서 계속해서 배우를 찾던 중에 ‘한, 두 명만 더 보자’고 한 뒤에 오디션을 본 것이 저였다. 평소에는 오디션을 준비할 때 계획을 많이 하는 편이다. 포인트도 찾고, 관련 작업들을 많이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하루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특별하게 준비하기보단 일단 대사부터 제대로 외우자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담백한 연기를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감독님의 의도에 더욱 맞아 들어간 것 같다.”
물론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연기를 하지 않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평소 꼼꼼하게 계획하고, 또 계산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최원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실종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주변의 부모들을 인터뷰하는 등 캐릭터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고, 이에 촬영이 시작되면서는 오롯이 동재 아빠가 될 수 있었다.
“동재 아빠가 나오는 장면은 정말 그 사건의 당사자가 출연한 듯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사실 배우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상을 보는 것과 주변인들을 인터뷰를 하면서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주변 아버지들에게 ‘아이가 실종이 되면 마음이 어떨까’에 대해 물어봤다. ‘언제가 자랑스럽냐’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동재는 아빠에게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40명 정도 인터뷰를 한 것 같다. 아들 혹은 자식에 대해 부모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준비 기간까지 포함해 여러 달을 ‘동재 아빠’로 생활한 만큼, 현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며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실종 관련 영상에서 본 부모처럼 실제로도 실종 전단지를 품에 안고 다니는 등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행동, 대사, 에피소드들이 떠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하루라도 전단지를 돌리지 않으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매일 들고 다닐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냥 입고 다니는 옷처럼 들고 다니시는 분을 봤다. 그래서 내가 아이디어를 낸 장면이 극 중 비 오는 날 전단지를 돌리는 장면이었다. 처음엔 우산을 쓰자고 제안을 해주기도 하셨다. 그런데, 나라면 우산을 쓰고 돌릴 정신이 없었을 것 같더라. 그래서 두 버전을 해봤고, 결국 우산을 쓰지 않은 장면이 담겼다.”
“감독님이 잘 수용을 해주셨다. 그래서 정말 원 없이 제가 준비한 것들을 다 이야기하고 해 볼 수 있었다. 감독님께서 알아서 선택을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후회 없이 해 본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수많은 대화와 또 조사, 연습을 거친 끝에 완성한 캐릭터인 만큼 현장에서도 저절로 상황에 몰입해 계산 없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이번 에피소드가 의도했던 다큐 같은 현실감이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아까 언급했던 비 맞는 씬에서 자연스럽게 그 순간에 몰입이 되더라. 중간에 넘어지기도 했는데, 그것도 NG가 아니었다. 그 상황에 빠져 연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연기를 할 때는 사전에 계산을 충분히 하고 임하게 되는데, ‘그냥 해도 되는 상황이 오는구나’ 싶더라. 물론 한, 두 달 이상 준비한 이후니까 캐릭터가 몸에 붙어 있어서 가능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매 순간 이 씬처럼 연기를 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장에서 내 몸을 맡기면 ‘그냥 그게 제일 좋은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를 한 번 다시 진짜 깨닫게 된 것 같다.”
동료 배우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질 수 있었다. 하나의 씬을 완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체감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 것이다.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돼 사건을 끌어나가고, 이 과정에서 느꼈던 남다른 몰입감은 물론 연기를 대하는 자세까지도 달라졌다. 결과를 떠나 ‘모범택시2’가 소중한 작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비 맞으며 연기하는 씬에서 100명에 가까운 출연자들이 필요했다. 내가 전단지를 돌릴 때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됐다. 4시간 정도를 촬영했는데, 어느 한 단역 배우 분이 내가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인공 눈물을 건네주시더라. 새삼 모두가 함께하는 작품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인사를 하려다가도 ‘해도 되나’ 싶어서 그냥 둘 때가 있다. 그런데 인사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장면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내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인기 드라마의 초반 포문을 열면서 주변인들의 반가운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물론 즐겁고 감사한 일이었다. 여기에 새롭게 느낀 경험들까지. 잊지 못할 작품이 된 ‘모범택시2’다. 그리고 25년 동안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다음 기회들을 차근차근 열어 온 최원은 지금처럼 묵묵히 연기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다.
“살아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질적인 연기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그 인물 극 중 한 인물로서 봐줄 수 있게 하려면 살아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게 연기관이라면 나의 최종 꿈은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 목표일 수 있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예술 봉사 같은 걸 하고 다녔었다. 청소년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하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거나 난타를 가르치기도 했다. 예술가가 할 수 있는 봉사란 이런 것이지 않나. 이걸 재단을 통해 좀 더 넓게 나눠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지방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경험을 나눠주고, 또 배우나 예술가들은 강사로 일 할 수 있는, 그런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