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투자만 120조…말뿐인 탈석탄 '야누스 금융' [자본의 온도①]

이세미 기자 (lsmm12@dailian.co.kr)

입력 2023.08.14 06:00  수정 2023.08.14 06:38

2050년까지 탄소중립 약속 '공염불'

"기후 위기 대응 자산 재구성 필요"

35.8도. 이번 세기 마지막 한반도에서 기록될 이른바 더위지수다. 지금보다 7.7도나 오른 수치. 그 만큼 열 받는 날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문제는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비싼 값이 매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만이 아닌 경제 아젠다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경제의 동맥은 언제나 그랬듯 금융이 쥐고 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지구의 수은주가 자본의 온도인 이유다. <편집자주>


2022년 3월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녹색연합 관계자가 삼척블루파워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운데 화석연료 금융과 관련된 금액이 12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침체됐던 에너지 수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화석연료 소비도 덩달아 급증한 영향이다.


이는 금융권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탈석탄 선언을 했던 것과 반대 행보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이 탈탄소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4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2022 한국 화석연료금융 백서'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총 자산은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118조5000억원이다. 그 동안 화석연료금융 중 석탄금융만의 규모만 추산해 왔으나, 석유와 천연가스 금융자산 규모가 밝혀진 건 처음이다.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대출과 채권, 주식투자만 합산한 규모다. 이번 보고서의 수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민간보험사의 부보금액(보험)인 94조9000원까지 포함하면 213조4000억원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이는 올해 정부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2012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누적금액이 37조2000억원에 불과해 투자 비대칭이 매우 심각했다는 지적이다.


국내 화석연료 금융 규모를 공적, 민간으로 구분하면 공적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61조8000억원으로, 전체 60.8%를 차지했다. 39조9000억원인 민간금융기관보다 1.5배나 많은 규모다. 이는 KDB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약 20조원의 한국전력 지분 때문이다.


다만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화석연료금융 금액인 16조8000억원을 제외, 화석연료금융 분석 자산을 118조5000억원이 아닌 101조7000억원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제출한 자료에는 천연가스와 석유 금융 부문이 분리돼 있지 않아 연료 간 분석을 왜곡시킬 수 있어서다.


2022년 6월 말 기준 석탄금융 잔액.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연료별로는 ▲석탄 48.4%(49조2000억원) ▲천연가스 29.7%(30조2000억원) ▲석유 21.9%(22조3000억원) 순이었다. 천연가스와 석유금융의 총액은 52조5000억원으로 석탄금융보다 3조3000억원이 더 많았다. 석탄뿐 아니라 천연가스와 석유를 포함한 전체 화석연료에 대한 금융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민간 금융의 기관별 화석연료 자산을 살펴보면, 손해보험이 9조7000억원(9.6%)에 이어 생명보험 15조원(14.7%)으로 전체의 총 24.3%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어 은행 13조9000억원(13.6%), 증권사 1조3000억원(1.3%) 순이다.


민간 금융에서 재생에너지와 석탄 투자 격차가 가장 큰 기관은 은행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재생에너지보다 석탄에 약 3.2배 더 많이 투자한 것이다. 5대 은행 중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2곳이 석탄보다 재생에너지에 더 많이 투자한 반면. NH농협은행은 재생에너지와 석탄 누적 투자 비율이 각각 2%와 98%로 석탄 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문제는 국내 자본의 움직임이 전 세계적 흐름과 뚜렷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대출‧채권 및 주식 투자를 통한 국내 금융기관의 석탄 금융 잔액은 5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약 5조9000억원 감소했으나 여전히 석탄 금융 잔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와중 탈석탄 선언을 한 국내 104개 금융기관 가운데 기존 투자금에 대한 단계적 철회 및 회수를 포함했거나 향후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힌 금융기관은 6개, 관련 논의를 시작한 금융기관은 5개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석탄발전과 같은 고탄소 산업과 에너지시장의 전환은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자산 조정과 관여 정책 없이는 실현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선언을 넘어 실질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석탄만이 아니라 석유와 천연가스 등 모든 화석연료 산업에 금융기관이 아낌없는 연료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수치로 밝혀졌다"며 "금융기관은 2050 넷제로의 관점에서 2030년 중간목표를 포함한 장기적인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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