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선정 요건 ‘조합원 과반 득표’로 강화
세부 기준 없어 제도 시행 한 달 지났지만 ‘잠잠’
‘정비사업 활성화’ 취지 무색…시공사 선정 ‘난항’ 예상
서울시가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시기를 앞당기면서 하반기 들어 건설사들의 일감 확보에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기대됐으나, 세부 기준 마련이 늦어지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22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조례’ 일부 개정안에 따라 재건축, 재개발 시공사 선정 시기를 종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겼다.
조합설립인가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받기까지 1~2년가량 시간이 소요되는 걸 고려하면 시공사 선정 시점이 그만큼 앞당겨져 건설사들의 수주 먹거리 확보에도 유리해졌다.
이 때문에 하반기 들어 도심 내 정비사업이 활성화할 거란 기대감이 고조됐다. 조례 개정에 따라 조합설립인가를 마친 114개 재건축, 재개발 사업장이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돼서다.
특히 한남뉴타운 내 알짜 입지를 자랑하는 한남4·5구역, 노량진뉴타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노량진1구역 등 굵직한 정비사업 물량도 시공사 선정을 대기 중이어서 건설사들의 물밑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관련 조례가 시행된 지 한 달가량 지났지만, 시장 분위기는 잠잠하다.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시공사 선정 시기를 앞당기면서 시공사 선정 요건은 ‘조합원 과반수 동의’로 강화한 것이 발목을 잡는단 지적이 나온다. 관련 세부 가이드라인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일례로 한남4구역은 서울시의 행정 처리가 늦어지면서 당초 하반기 예정됐던 시공사 입찰 공고에 제동이 걸렸다. 한남뉴타운 내 노른자위 입지를 갖춘 만큼 이곳 사업장은 건설사 4곳 이상이 현재 수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시공사 선정 절차에 돌입하면 조합원들의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큰데, 조합원 과반 이상 표를 얻지 못하면 최다 득표를 하더라도 시공권을 따낼 수 없게 된다. 기존에는 조합원 과반이 참석한 총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건설사가 시공사로 선정됐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과도한 출혈 경쟁이나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불거지는 분쟁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강화된 시공사 선정 요건을 적용하면 최근 수주전을 치른 대부분 사업장이 재투표를 통해 시공사를 다시 정해야 한다”며 “2개 건설사가 맞붙어도 표가 한쪽으로 온전히 몰리기 힘든데, 사실상 경쟁 입찰은 하지 말고 수의계약만 하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중견사들은 시공사 조기 선정으로 이미 일감 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어떻게 경쟁 입찰이 되더라도 조합원 과반 득표를 해야 한다는 건 사실상 브랜드 경쟁력이 약한 건설사들은 정비사업 수주를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 역대급 수주 경쟁을 치른 한남3구역 재개발은 현대건설과 DL이앤씨, GS건설이 수주전을 치른 결과, 현대건설이 전체 조합원 중 30.4%의 표를 얻어 시공사로 선정됐다. 지난해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은 노량진3구역 재개발은 포스코이앤씨가 득표율 49.7%로 시공권을 확보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요건을 강화함에 따라 정비사업 활성화란 시공사 조기 선정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관련 세부 가이드라인도 마련되지 않아 건설사는 물론 조합도 혼란을 겪을 것. 시공사 선정에 애를 먹으면서 전체적인 사업 일정이 늦어져 주택공급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