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 CEO 간담회 후 브리핑서 작심 비판
“70대 노인에게 고난도·고위험 상품 권유, 적절한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감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판매한 은행들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취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작심 비판했다. 피해 예방보다는 자기 면피를 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복현 원장은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진행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금융투자상품 관련 자기 책임 원칙은 존중한다”면서도 “일부 은행에서 (금감원이) 묻기도 전에 ELS와 관련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를 취했다기 보단 본인들의 면피 조치를 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이후 홍콩 H지수의 약세가 이어지면서 해당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들이 대규모 손실을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 등에서 주로 지난 2021년부터 해당 상품을 판매해 왔는데 지수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의 성격상 대규모 손실이 임박한 상태다.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ELS 중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는 8조4100억원이다. 투자자들은 은행들이 해당 상품의 투자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 중인 반면 은행에서는 주로 비대면으로 판매됐다는 점을 들어 과거 사모펀드 사태와 달리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금감원은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 현장검사를 시작으로 시중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그는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의 원칙과 상품 판매 절차 규제 본질에서 살펴보면 은행처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금소법상 적합성의 원칙은 금융기관이 소비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가입 목적에 맞는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취지로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본질적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 원장은 “은행 창구에서 이런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특정 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도 과연 그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홍콩 H지수가 지난 2016년에도 몇 개월 사이 49.3%나 폭락한 전례가 있고 2018년도에도 급락을 했던 지수였다며 채 몇 년 지나지 않은 상황에 노후자금 맡긴 고령 투자자에게 이를 제대로 설명하고 권유한 건지 의문을 제기했다. 설령 투자자들이 다 이해하고 답변을 했을지라도 판매사의 책임이 다 면피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적절한) 설명 여부를 떠나 노후 보장 목적으로 만기된 정기예금 등을 재 투자하고 싶어 하는 70대 고령자들에게 수십%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난도 상품을 권유했다는 것 자체가 적절했는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은행에 ELS 판매가 과도하게 집중된 점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ELS 중 내년 상반기에 만기를 맞는 8조4100억원 중 KB국민은행이 차지하는 비중(4조7726억원)은 절반을 넘는다. 이는 증권사 전체(3조5000억원) 보다도 1조원 이상 많은 금액이다.
이 원장은 일부 은행에서 언급한 ELS 판매 한도 준수에 대해 “ELS 판매 한도가 있었다고 운운하는데 한도가 없는 수십 개의 증권사를 합친 것보다 KB국민은행 한 곳에서 판매한 물량이 많다”며 “노후 자금을 가지고 신뢰와 권위의 상징인 은행 창구로 찾아오는 소비자들의 보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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