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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3기 출범하자 美 밀입국 중국인 확 늘었다


입력 2023.12.03 05:05 수정 2023.12.03 05:05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美 밀입국 중국인 2만4000명 돌파…10년간 합친 수보다 많아

올해 9월까지 2만2000명 넘어…지난해보다 무려 12.7배 증가

중남미 루트, 멀고 험난한 여정이지만 美 입국 성공 확률 높아

폭압적인 시진핑 체제에 대한 좌절감과 혹독한 코로나 봉쇄 탓


지난 10월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환승센터에서 밀입국한 중국인 커플이 국경 순찰대원들의 안내로 버스 탑승을 기다리며 마스크 착용을 도와주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10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남단 멕시코와 접한 국경마을 자쿰바. 밀입국으로 이곳에 온 중국인 천(陳)모는 "가장 좋아하는 나라 미국에 오게 돼 너무 행복하다"며 "중국 정부가 우리 땅을 강제 몰수했는데 값이 터무니없이 싸다. ‘조폭’ 같은 공무원들이 몰려와서 때리기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모든 걸 다 해냈다"며 활짝 웃었다. 옆에 있던 중국인 덩(鄧)모(28)는 "미래는 모르겠다"며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맞지만 지난날보다 더 힘들기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중국인들이 중남미를 통해 몰래 미국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행 중남미 이민자들 중에는 멕시코·에콰도르 등을 거쳐 미국에 밀입국하는 중국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 등이 지난 24일 보도했다. 폭압적인 시진핑(習近平) 정권에 좌절감을 느끼거나 중국 당국의 혹독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봉쇄 이후 어려움에 처한 중국인들이 중남미 국가를 통해 위험천만한 정글지대를 거쳐 미국에 들어가는 험난한 여정을 선택하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미국에 밀입국하는 주된 루트인 멕시코에서 미국에 입국하려다 체포된 중국인들은 지난 한해 동안 2만 4000명을 넘었다. 최근 10년을 합친 수치보다 더 많다. AP통신은 올해 1~9월 사이 미국-멕시코 국경지대에서 국경순찰대에 붙잡힌 중국인은 2만 2187명인데, 지난해 같은 기간(1741명)의 12.7배를 넘는다고 전했다. 지난 9월 체포 건수(4010건)는 전달보다 70%나 증가했다.


중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멀고 먼 중남미 루트를 택하는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덕분이다. 일단 국경지대에 도착해 국경 공무원들에게 자수하고 이민국 법원에 망명을 요청하면 대부분 성공한다. 중국 당국은 밀입국자들을 본국에 잘 송환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 시라큐스대에 따르면 미 정부는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인 망명 신청자의 67%가량을 승인했다.


지난 10월24일 미국 캘리포이나주 남단의 멕시코 접경 국경마을 자쿰바에서 밀입국한 이주자들이 국경장벽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들이 밀입국하는 방법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거쳐 에콰도르로 간다. 에콰도르는 중국인을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중남미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에콰도르에서 버스로 콜롬비아로 이동해 관광지이자 교통요지인 네코클리에 닿은 후 본격적인 ‘다리엔 갭’Darien Gap) 여정을 준비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밀입국 비용은 30만~40만 위안(약 5400만~7200만원)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리엔 갭은 파나마 남쪽과 콜롬비아 북쪽 일대에 60마일(약 100㎞)가량 길이로 뻗어 있는 열대우림 지역이다. 가파른 산과 빽빽한 숲, 늪지대와 급류, 독거미와 독사, 폭우와 홍수 등 그야말로 악명 높은 정글지대다. 남미에서 북미로 넘어가는 사실상 유일한 육상 경로인 이곳은 콜롬비아 마약상들이 점령해 치안이 보장되지 않는 만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오지(奧地)로 불린다.


여기에다 도로도 없는 상황에서 60마일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이들을 노린 무장강도와 밀수범, 마약조직, 인신매매조직이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른다. 이곳을 통과하려다 숨지는 인원은 해마다 수십명에 달하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거나 실종사실이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공산이 크다.


AP에 따르면 올해 1~9월 다리엔 갭을 통과한 이주민들은 30만 8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중국인은 1만 5000명에 달한다. 베네수엘라(17만 1000명)·에콰도르(4만명)·아이티(3만 5000명)에 이어 네번째로 많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간 이곳을 통과한 중국인은 고작 376명에 불과했다.


영국 가디언은 콜롬비아에서 다리엔 갭을 거쳐 파나마에 들어온 중국인은 지난해 상반기에 400명가량이었다며 그러나 하반기 이후 이곳을 통과한 중국인들은 폭증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 각각 377명과 695명으로 증가했고, 올해 1월에는 913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지난 5월11일 미국과 접경한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주 샌이시드로에서 중남미에서 온 이민자들이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중국인들의 미국 밀입국이 늘어나는 것은 정치적 자유가 갈수록 없어지는 권위주의적인 시진핑 체제가 주요인의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본토에서 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11만 6868명에 이른다. 시 주석 체제가 출범하기 시작한 2012년 1만 5362명과 비교하면 무려 7.6배나 늘어난 수치다.


영어교사 출신 쉬(徐)모(35)는 “중국을 떠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환경”이라며 “중국은 질식할 정도로 너무 숨이 막힌다”고 강조했다. 이안 존슨 외교관계협회 선임연구원은 “정치적 상황이 예전보다 훨씬 위험해졌다고 느끼는 중산층들이 미국으로 오고 있다”며 “중국에서 빠져나오려고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실직을 했거나 사업에 실패한 중국인들이 미국 밀입국을 시도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홍콩에서 중남미를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수십명씩 붙잡고 있다.


공장을 운영하며 무역업에 종사하던 리(李)모는 "코로나 19로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올랐다"며 "미국에서 돈을 벌어 빚을 갚겠다는 것이지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전만 해도 여윳돈을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할 정도로 넉넉하게 살았다는 그는 코로나가 닥치면서 무역이 끊겼고 자금난이 닥치면서 공장을 더 이상 돌릴 수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자료: AP통신·NYT 등 외신종합

그럼에도 지방정부는 보조금과 세금감면 혜택을 주면서 코로나 기간 중 문을 닫지 못하게 했고 올들어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서 정부 보조금은 끊겼다. 이 때문에 직원들에 대한 5험1금(중국에서는 5대보험에다 장기주택적금 성격의 주택공적금을 회사가 제공한다) 부담이 다시 늘어나 빚을 떠안은 채 문을 닫았다. 이에 공급상들과 노동자들이 그를 법원에 고소하는 바람에 그는 할수 없이 밀입국하기 위해 홍콩으로 가는 길목인 광둥성 선전에 온 것이다.


밀입국 조직에 정통한 광둥성 소식통은 "10년 전부터 밀입국 조직이 많이 줄어 유명무실하다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며 "팬데믹을 거치면서 직장을 잃었거나 사업이 실패해서 하는 수없이 먹고 살려고 미국에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중국 밀입국자들은 동남부 푸젠(福建)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에는 쓰촨(四川)성과 산둥(山東)성, 허난(河南)성 등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밀입국자 대열에 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입국 조직들이 미국 밀입국 중간 거점으로 에콰도르를 많이 이용하다 보니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抖音)에는 에콰도르에서 멕시코로 들어가는 과정을 알려주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이 소식통은 "홍콩과 중남미를 거쳐 미국으로 가려면 조직책에게 수십만 위안을 건네야 하고, 남미 밀림에서 멕시코까지 안내하는 안내인들에게 수만 위안을 줘야 한다"며 "그러나 밀림에서 밀입국자들이 안내인의 총에 맞아 죽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위험한 상황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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