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사과 미래는 서늘하다. 사과 물가는 그냥 오른 정도가 아니라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할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서민 장바구니 부담을 가중시킨 사과가 물가 전반을 끌어올린 셈이다.
지난달 사과 물가상승률은 71.0%로 역대 3번째로 70%를 넘었다. 더불어 3.1%였던 2월 소비자물가에서 0.16%p(포인트)를 기여했다. 만약 사과 물가상승률이 작년(-6.08%)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처럼 물가상승 주범으로 몰린 사과는 정부 대책이 실패했다고 불리고도 있다.
최근 송미령 농림축사식품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기자들을 모아 불렀다. 사과 물가로 떠들썩한 민심 때문이다. 송 장관은 국민 과일로 불리는 사과·배 등의 과일을 대체할 수 있는 품목을 수입해 수요를 분산하겠다고 설명했다. 바나나·오렌지·파인애플·자몽·망고·아보카도 등 기존 품목뿐 아니라 만다린·두리안·파인애플 주스에도 수입 할당관세(일정 기간 관세를 사실상 인하)를 적용해 수입량을 늘리기로 했다.
여기서 의문이다. 만다린과 두리안 등이 과연 과일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을지다. 국민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비인기 과일을 내놓으며 ‘물가대책 특단조치’라는 생색은 도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서울 양재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열린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 “농산물 가격이 평년 수준으로 안정될 때까지 기간, 품목,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납품단가와 할인지원을 전폭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엔 1단계로 현재 24종인 과일류 관세 인하 품목에 체리와 키위, 망고스틴 등 5종을 바로 추가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정부가 꺼내든 일회성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근본적인 해결법이 될 수 없다.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 부담을 줄일 수 있겠지만 깜짝 할인이 ‘365일 세일’로 바뀌면 시장 가격을 왜곡하고 물가 잡기에도 힘만 뺄 뿐이다. 이미 오른 가격에 열정을 다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적 관심을 촉발해 사과 수요를 부추길 수도 있다.
‘애플레이션(사과로 인한 물가 상승)’을 결코 올 한 해의 현상으로 넘겨선 안 된다. 농가 고령화로 과수원은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다 기후변화까지 겹쳐 과일 재배면적은 점차 줄고 있어서다. 사과 재배면적은 2023년까지 8.6% 감소해 여의도(290㏊) 10배에 달하는 재배지가 사라진다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전망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은 2100년에는 사과가 강원도 일부에서만 재배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 국내 작황도 어려운 데다 검역 기준 때문에 수입도 막혀 있다. 상대국 수입 위험분석 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데 수출국 내 있는 병해충과 과수 전염병 등이 국내에 들어오면 국내 생산 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값 과일은 단기간에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일까. 햇사과(아오리)가 나오는 넉 달 동안 전 세계에서 비싼 사과를 사 먹을 수밖에 없는 선택지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특단의 대책이 독단의 결정으로 변모되질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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