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창원서 열린 LG와 전자랜드의 ‘2008-09 프로농구’ 4라운드에서 4쿼터 4분 23초경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하게 할 만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자랜드 김성철은 서장훈에게 패스하고 골밑 쪽으로 쇄도하다가 밀착수비를 하던 LG 신인 기승호의 얼굴을 팔꿈치를 사용해 정통으로 가격한 것. 기승호는 비명을 지르며 코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고 경기는 잠시 중단됐다. 심판은 비신사적인 파울로 김성철에게 퇴장을 선언했다.
TV 리플레이 화면에서는 김성철이 의도적으로 팔꿈치를 들어 기승호의 얼굴을 노리고 들어가는 모습이 여러 각도를 통해 잡혔다. 기승호는 잠시 후 일어났지만 클로즈업된 턱과 목 언저리에는 가격당한 자리가 붉게 멍들어있었다. 자칫 급소에 맞기라도 했더라면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을 만큼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농구계 9년 선배 앞에서 까마득한 신인은 얻어맞고도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김성철은 퇴장명령을 받고도 불만 섞인 표정을 지으며 잠시 코트를 떠나지 않았고, 심판이 상대의 푸싱 파울을 먼저 불지 않았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보복행위 자체도 용납 받을 수 없는 행동이지만, 만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팔꿈치를 휘두르고도 반성은커녕, 심판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태도는 지켜보던 이들마저 아연하게 했다.
이날 경기는 결국 LG의 20점차 대승(90-70)으로 끝났다. 김성철은 LG의 강력한 수비에 막혀 단 6점에 그쳤다. 특히, 경기 내내 기승호의 집요한 밀착수비에 짜증이 나 있던 김성철은 자리싸움 과정에서 잦은 신체접촉을 했었고, 이를 심판이 파울로 불지 않자 홧김에 돌발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코트 위에서 보복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농구 경기에서 거친 몸싸움이나 판정불만으로 인해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결코 넘지 말아야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
고의적으로 상대를 노려서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이미 스포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특히 선배라는 점을 악용해 까마득한 후배가 마음에 안 드는 플레이를 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통해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행위는 프로 자격을 떠나 선수의 ‘인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행동이다.
팔꿈치에 가격당한후 고통스러워하는 기승호.
■ 의도된 보복행위 ‘일벌백계 필요’
농구 코트 위에서의 폭력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03시즌 당시 SK 빅스의 최명도는 대구 오리온스와의 홈경기 도중 김승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불미스러운 행동을 저질렀다. 같은 해 전주 KCC의 정재근도 서울 삼성 박성훈의 턱을 팔꿈치로 가격해 징계를 받았다.
2005-06시즌에는 창원 LG의 외국인 선수 드미트리우스 알렉산더가 동부 손규완을 팔꿈치로 가격하며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듬해 LG의 퍼비스 파스코는 상대의 거친 파울에 불만을 품고 KTF 장영재에 이어 퇴장을 선언한 심판까지 폭행하는 초유의 사태로 영구 퇴출된 바 있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폭력 사태들이 매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KBL은 그간 이러한 코트 내 폭력사태에 대해 일관성 있는 처벌 기준이나 징계 수위를 확립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잦아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당시 폭력사태에 휩싸였던 최명도는 3경기 출전정지와 벌금 3백만원에, 정재근은 2경기 출전정지 및 벌금 30만원에 그쳤다. 심지어 집단난투극으로까지 이어졌던 알렉산더의 폭력행위에 대한 징계는 고작 1경기 출전정지 및 벌금 3백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KBL이 ‘폭력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코트 위에서 어떤 이유와 수단을 막론하고 모든 폭력은 근절되어야겠지만, 특히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보복행위는 ‘일벌백계’가 마땅하다. 잔여 경기 출전을 금지시키거나 아예 일정기간 선수 자격을 정지시키고, 해당 구단에도 관리 책임을 묻는 등 강력한 제제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원칙이 분명하게 확립되지 못할 경우, 차후에도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 언제든 또 다른 사태가 재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축구의 경우, 지난해 11월 2일 K리그에서 서울의 이청용이 부산 수비수 김태영에게 ‘날라차기 파울’로 퇴장당하는 장면이 TV 중계화면에 그대로 잡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청용은 고의적인 가격에도 불구하고 연맹으로부터 불과 2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100만원의 경징계에 그치며 특정 구단과 스타 선수에 대한 특혜 논란으로 여론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공정하지 못한 대처로 폭력행위에 대하여 사실상 면죄부를 준 대표적인 사례다.
KBL은 처벌 기준도 불명확한 ‘중계화면 욕설 징계’같은 것보다 더 시급하게 신경써야할 문제가 바로 이런 코트 폭력이다. 연중행사처럼 등장하는 이러한 코트 폭력사태를 더 이상 ‘어쩌다 한번 있을 수도 있는 일’ 정도로 안이하게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프로선수라면 운동만 잘한다고 전부가 아니라, 그에 걸맞은 페어플레이와 동업자 정신이 필수다. 스포츠맨십이 상실된 프로스포츠는 존재 가치가 없다.
회심의 ‘엘보우 어택’ 한 방으로 까마득한 후배에게 순간의 화풀이를 했을지는 몰라도, 김성철은 이번 사건을 통해 자신의 선수생활에 한순간 불명예스러운 오점을 남기게 됐다. 30대를 넘긴 베테랑에 국가대표까지 지냈다는 스타 선수가 저지른 행동이라기에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의 성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팀은 경기에서도 지고 매너에서까지 졌다. 대신 그날 코트를 찾았던 어린이 팬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중들, 시청자들 앞에서 한동안 잊혀 지지 않을 ‘성철타의 추억´으로 당분간 본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 순간 이미 김성철은 스포츠맨이기를 포기한 것이다.[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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