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스만, 2세대 팰리세이드, 아이오닉 9 등 '크고 비싼 차' 잇달아 출시
국내 E 세그먼트 시장 지각변동…'선택지 다양화로 파이 확대' 시각도
중형 및 준중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던 대형 RV(레저용 차량) 시장에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넓은 실내공간과 적재능력, 다양한 활용성을 갖춘 덩치 큰 RV들을 내놓고 시장 확대에 나선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올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 사이 준대형 SUV 팰리세이드 풀체인지 모델, 준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9, 중형 픽업트럭 타스만을 잇달아 출시한다.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것은 지난달 사우디 제다모터쇼에서 공개된 기아 타스만이다. 타스만은 미국 픽업트럭 분류 기준으로 중형 픽업트럭이지만, 국내에서는 준대형 SUV들과 비슷한 덩치를 지녔고 적재량에서는 오히려 우위에 있다.
개발 과정에서 준대형 SUV 모하비의 바디 온 프레임 플랫폼이 기반이 되기도 했고, 가격도 준대형 SUV들과 비슷하게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타스만은 픽업트럭의 특성상 2열 5인승의 시트 구조를 갖지만, 레저를 즐기는 수요층은 준대형 SUV도 3열 이후는 적재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스만이 새로운 선택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타스만은 샌드, 머드, 스노우 등 터레인 모드를 제공하는 4WD 시스템, 800mm 도하능력, 최대 3500kg까지 견인할 수 있는 토잉 성능 등 오프로드에 특화된 성능과 편의사양을 갖추면서도 픽업트럭에서는 사실상 포기해야 했던 2열 편의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2열 시트를 최적 설계해 중형 픽업트럭 최초로 슬라이딩 연동 리클라이닝 기능을 적용했으며, 동급 최고수준의 레그‧헤드‧숄더룸을 확보했다.
홀로 아웃도어를 즐기는 정통 오프로더 수요 뿐 아니라 4인 가족이 편안하게 탑승하면서 뒤쪽 적재함에는 캠핑장비 등을 가득 실을 수 있는 패밀리카 수요까지 겨냥한 것이다.
이는 타스만이 기존 국산 픽업트럭인 KG 모빌리티의 렉스턴 스포츠 뿐 아니라 중형 및 준대형 SUV들과도 경쟁할 것을 염두에 둔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대차의 준대형 SUV 팰리세이드의 풀체인지 모델도 내년 상반기 출시를 앞두고 스파이샷과 예상도가 공개되는 등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쏘렌토, 싼타페 등 중형 SUV보다 월등히 넓은 전폭과 긴 전장을 갖춘 팰리세이드는 국산 대중차 시장에서는 ‘아빠차의 정점’으로 여겨져 왔다.
풀체인지된 2세대 팰리세이드는 디자인은 물론, 파워트레인과 시트 배치에서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2세대 팰리세이드 엔진 라인업에 기존 2.2 디젤, 3.8 가솔린 외에 새롭게 개발된 2.5 터보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과 함께 날로 인기가 높아지는 하이브리드 엔진 장착은 2세대 팰리세이드의 경쟁력을 높여줄 가장 큰 요소다.
이와 함께 최근 스파이샷을 통해 시트가 3+3+3 구성으로 배치된 2세대 팰리세이드 위장막 모델이 포착되며 9인승 모델 추가도 기정사실화 됐다. 9인승 모델은 필요시 미니밴 수준의 인원을 태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하이브리드 및 9인승 모델 추가는 2세대 팰리세이드가 한 집안 식구인 스타리아 및 기아 카니발과 경쟁할 가능성을 암시한다.
특히 ‘미니밴 시장의 맹주’인 카니발로서는 쓰임새가 업그레이드된 2세대 팰리세이드의 존재가 부담일 수 있다.
카니발은 전형적인 도심형 승합차의 형태를 지닌 반면, 팰리세이드는 지상고가 높아 아웃도어용으로 쓸모가 더 많은 데다, 출퇴근 등 일상용으로 타기에도 디자인적으로 무리가 없다.
특히 1.6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다소 답답한 주행 질감이 한계로 지적되는 카니발 하이브리드와는 달리 2세대 팰리세이드는 2.5 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해 큰 덩치를 움직이기에 충분한 출력과 토크를 제공한다.
현대차 최초의 준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9도 패밀리카 시장에 큰 화제를 몰고 올 모델이다. 현대차는 오는 22일(현지시간) 미국 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24 LA오토쇼에서 아이오닉 9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고 글로벌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다. 국내 출시는 12월 중으로 예상된다.
아이오닉 9은 선행 콘셉트 모델인 ‘세븐’ 시절부터 ‘차원이 다른 실내공간’을 중점으로 내세웠었다. 동급 최고 수준의 휠베이스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3열까지 확장된 플랫 플로어를 통해 넓은 실내 공간을 제공한다.
현대차는 지난 13일 아이오닉 9 내장 티저 이미지를 공개하면서 실내 공간을 극대화해 3열을 갖추고 최대 7명까지 탑승할 수 있으며, 각 탑승자들이 다양하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전동화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이먼 로스비 현대디자인센터장 전무는 “아이오닉 9은 고객 중심의 라운지와 같은 공간을 제공한다”며 “기술, 디자인, 편안함이 모빌리티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융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이오닉 9의 경쟁 모델은 같은 가격대에서는 기아의 EV9이 유일하다. 비슷한 차체 크기와 실내공간을 갖추고, 같은 용량의 배터리를 장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1회 충전 주행거리의 경우 최신 모델일수록 배터리 성능 개선과 구동계 효율성 강화가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오닉 9이 EV9보다 좀 더 길어질 여지도 있다.
이들 두 차종은 경쟁보다는 합세해 시장을 넓히는 일부터 해야 할 처지다. 지난해 6월 출시된 EV9은 11월까지 월평균 1000대에도 못 미치는 부진을 거듭하다 12월 자사 및 계열사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 임직원에다 친인척까지 최대 2000만원을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재고를 밀어내는 굴욕을 겪었다. 올해도 월평균 100여대의 판매실적으로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되고, 제조사들은 저가의 소형 전기차를 내놓으며 대응에 나선 지금의 상황은 고가의 대형 전기차인 아이오닉 9가 출시되기에 최적의 환경은 아니다.
다만, 아이오닉 9 출시로 차종이 다양해지면서 준대형 전기 SUV 시장이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E세그먼트(국내 기준 준대형 이상) 시장이 제대로 활성화 된다면 완성차 제조사는 수익성을 높이는 데 유리한 상황을 맞게 된다”면서 “지금은 파워트레인이나 용도별로 혼재된 시장이지만, 여력이 된다면 내연기관이든 하이브리드든 전기차든 SUV든 픽업트럭이든 다양한 선택지를 구비해 놓고 물꼬가 트이는 쪽으로 집중하는 게 현명한 전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