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 심심하다가도 씁쓸하다.
홍상수 감독의 33번째 장편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3년 사귄 연인 준희(강소이 분)의 집에 방문한 삼십대 시인 동화(하성국 분)의 하루를 그린다. 잠시 집 구경만 하려던 동화는 준희의 아버지(권해효 분)를 마주치고, 그 바람에 준희의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술에 취한다.
영화 초반부에는 청각적 요소가 돋보인다. 엔진 소리가 우렁찬 동화의 차로 시작해 개, 닭 등의 동물 소리, 준희의 언니가 치는 가야금 소리가 쉬지 않고 귀를 때린다. 이로 인해 동화와 준희의 아버지, 언니 사이에서 어색하게 오가는 대화는 더 깊은 정적을 남긴다.
준희의 가족은 동화에게 계속해 "왜 콧수염을 길렀냐", "직업이 무엇이냐", "중고차를 모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동화는 난감해 하다가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지만, 작고 뾰족한 불쾌감들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영화는 싱그럽고 푸르른 여름의 자연을 전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고 이상향을 좇으려 하는 주인공과 그에게서 언뜻 느껴지는 괴리 또한 가감없이 담아낸다.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동화는 준희의 아버지 앞에서는 수용적인 태도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지만, "조금 아프다"는 설명을 듣고 만난 준희의 언니 앞에서는 콧수염의 역사에 대해 읊으며 젠 체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태도는 술이 들어가며 폭발한다. 준희의 언니가 변호사인 아버지의 영향력을 계속해서 언급하자 "나에 대해 뭘 아냐"며 화를 낸다. 준희는 한숨을 쉬며 자리를 수습하고, 동화는 결국 다음날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동화를 지켜봐 온 준희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평이 이어진다.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지켜봐 오던 관객에게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그래 그래, 네가 느낀 것이 맞아'라고 다독인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그저 한 남성의 하루를 보여줄 뿐이다. 이 남성은 여자친구의 가족과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다 취해 실수를 한다. 이 하루는 그의 삶 속 작은 조각에 불과할 뿐,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그 또한 성장할 것이다.
다만 이 남성의 일상에서 관객은 이상주의의 좌절과 그 씁쓸함을 마주하게 된다. 동화는 물질적 가치를 내세우는 아버지를 부정하지만, 끝내 그를 넘어설 만한 자기만의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한다. 관객은 그런 동화의 모습을 비웃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 그런 꿈을 품어본 적 없다고는 자신하지 못한다.
결국 이 영화는 말한다. 이상은 때때로 우습고, 현실은 자주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흘러가야 한다고. 그리고 자연은 조용히 곁에 머물며, 변하면서도 한결같이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5월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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