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로슈·릴리 등 미국 제조 시설 강화
트럼프 관세 정책 앞두고 현지 생산력 높여
반면 국내 생산력 강화에 집중하는 삼바로직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의약품 관세 부과 발표가 임박하면서 글로벌 빅파마들이 잇따라 미국 내 생산 공장 설립에 나서고 있다. 발 빠르게 나서는 글로벌 빅파마와 달리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보다 신중한 모습이다.
26일 외신에 따르면 최근 스위스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는 향후 5년간 미국에 230억 달러를 투자해 7개의 제조 공장을 건설하고 기존 3개 시설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노바티스는 “미국 환자를 위한 모든 주요 의약품이 미국에서 제조될 것”이라며 “10개 시설을 통해 제조·연구·기술 입지를 확장하고 약 4000개의 추가 미국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바티스와 마찬가지로 스위스에 뿌리를 둔 로슈도 향후 5년 동안 5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13개의 제조 시설과 15개의 R&D 센터를 확장, 신설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로슈와 로슈의 자회사인 제넨텍은 이어 지난 12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 6만5032㎡ 규모에 달하는 대형 신규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7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비만약 판매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일라이릴리는 미국에서 원료 의약품 신규 공장을 설립할 부지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망에 오른 지역은 휴스턴 상업 단지인 제너레이션 파크로 일라이릴리는 약 59억 달러를 들여 부지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백신 개발사인 사노피는 2030년까지 미국에 최소 200억 달러를 투자해 현지 제조 및 연구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미국 매출 비중이 높은 존슨앤존슨(J&J), 머크(MSD) 등 글로벌 빅파마가 현지 R&D 및 제조 시설에 투자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미국 이전에는 트럼프 정부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집권 1기 때부터 미국 내 생산을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2기 집권 이후 의약품 수입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시사하면서 다시 한번 제약 산업의 ‘미국 회귀’를 요구하고 있다.
손 꼽히는 美 현지 생산…낮은 효율성에 ‘검토 중’
글로벌 빅파마들이 적극적으로 미국 내 생산 시설 확보에 나선 것과 달리 대다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미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직접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롯데바이오로직스, 차바이오텍의 자회사 마티카바이오테크놀로지 등 손에 꼽히는 정도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로부터 인수한 미국 시러큐스 공장에 항체-약물접합체(ADC) 위탁개발생산(CDMO) 시설을 증축하고 지난 4월 아시아 소재 바이오 기업과 ADC 임상용 후보 물질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약 1억 달러가 투자된 롯데바이오로직스의 ADC 생산 시설은 cGMP 시설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 최대 1000ℓ 접합 반응기를 포함한 통합된 생산 및 정제 라인을 갖췄다. 이번 계약은 시러큐스 공장 ADC 생산 시설의 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선제적으로 미국에 생산 공장을 갖춘 롯데바이오로직스 또한 국내 송도 생산 시설 완공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다방면의 검토를 통해 미국에 있는 BMS 공장이 메리트가 있다는 판단 하에 (2022년) 인수하게 된 것”이라며 “현재는 송도 생산 시설 완공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내 생산 시설은) 검토 단계라 확정된 것은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송도에 위치한 기존 생산 인프라를 활용해 빠르게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내 생산 공장 신설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속도와 효율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은 착공 약 2년 반 만에 GMP 인증까지 받으며 빠른 속도로 생산 역량을 확장해왔다. 반면 미국 생산 시설은 착공부터 완공, GMP 인증까지 최소 4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아 동일한 일정으로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도 과거 미국 의약 전문지 피어스파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한국만큼 빠르게 공장을 지을 수 없다”며 “만약 우리가 완전히 새로 공장을 짓고, 2년 안에 GMP 인증까지 받겠다고 한다면 현재로서는 미국에서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주력 품목이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시밀러나 CMO, CDMO인 만큼 미국 내 고율 관세가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 있다”며 “공장을 새로 짓는 데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만큼 현지 투자 결정은 단순히 정치적 변수만이 아니라 수요, 인허가, 운영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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