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책임감 및 배드뱅크 출연 요구 충돌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와 면책 조항 필요
출연금 분담 기준,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마련돼야
최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중 하나가 이사 충실의무의 확대이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명확히 확대했다.
이제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와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해야 하며, 소액주주도 보호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과거 대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던 관행에 제동을 걸고,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과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강화하는 데 중대한 진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사의 의사결정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이란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즉,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목적을 위해 회사 자산을 사용하는 경우, 전체 주주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지 더욱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다.
한편, 정부는 장기연체채권 소각 등 취약계층의 금융부담 완화를 위해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 중이다. 8천억원 규모의 재원 중 절반을 은행, 보험, 저축은행 등 전 금융권이 분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사회적 책임 이행을 강조하며, 은행권뿐 아니라 2금융권의 적극적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사는 소각 대상 채권의 상당 부분이 2금융권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자산과 이익 규모가 큰 은행이 실질적으로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구조에 대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 출연금 분담 비율 산정의 객관성, 각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등도 논란거리이다.
그렇다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배드뱅크 출연간에 상충되는 법적·경영적 쟁점이 존재하지 않을까?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 전체’로 확대되면서, 배드뱅크 자금 출연 요구가 이사의 법적 의무와 충돌할 소지가 커졌다.
배드뱅크 자금 출연이 사회적으로는 긍정적이나, 회사와 주주의 직접적 이익에 반할 경우 이사가 배임죄로 고발될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 주주나 소액주주가 "출연금이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할 경우 이사 개인에 대한 소송 가능성이 커졌다.
경영판단의 원칙이 도입되더라도 충실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이 원칙이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사들의 법적 리스크는 존재한다.
배드뱅크 출연은 사회적 약자 지원과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갖는다. 하지만 이사의 1차 의무가 주주 전체의 이익 보호임을 고려할 때, 공공정책과 주주이익 보호 사이에서 이사의 판단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정부의 정책적 요구가 법적 의무와 충돌할 경우, 이사들은 어느 쪽을 우선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주 이익과 공공이익이라는 의사결정에 상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합리적 해법 모색이 필요하다. 첫째,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가 필요하다.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은 이사가 기업 경영 과정에서 내린 결정이 사후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그 결정이 선의(good faith)와 합리적 판단(reasonable judgment)에 기반했다면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원칙이다.
이는 이사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하고, 경영위축을 방지하기 위한 핵심 제도적 장치이다. 따라서 이사의 선의와 합리적 판단에 대한 면책 조항을 명확히 해 사회적 책임 이행 과정에서의 법적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수집·분석했는가, 이해상충 없이 회사 및 주주의 이익을 우선했는가, 의사결정 과정에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없는가에 관한 면책요건을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출연금 분담 기준의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실채권 규모, 각 금융기관의 재무 상황 등을 반영한 합리적 분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분담 공식의 법제화 및 투명한 공개가 요구된다.
즉, 분담 기준과 산식, 적용 데이터(부실채권 규모, 재무지표 등)를 법령 또는 금융당국 지침에 명확히 규정하고, 매년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아울러, 분담금 산정 과정의 외부 검증도 요구된다. 금융감독원 등 외부기관이 각 금융기관의 제출 자료와 분담금 산정 결과를 검증해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 전체로 확대된 것은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의 큰 진전이다.
그러나 배드뱅크 자금 출연과 같은 사회적 요구와의 충돌은 이사들에게 전례 없는 법·경영 측면에서의 딜레마를 안기고 있다. 사회적 책임과 주주 이익의 균형, 그리고 이사의 법적 리스크 해소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금융사 이사들이 공공성과 주주 이익 사이에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제도 정비가 병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글/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jyseo@smu.ac.kr / rmjise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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