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을 허락하지 않는 '캐리어' [D:쇼트시네마(129)]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8.20 08:32  수정 2025.08.20 08:32

정진호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고요하고 범죄 없는 마을에 정체 모를 한 남자(이달 분)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다. 다리 밑에서 먹은 것을 토해내던 남자 옆에 아이가 나타난다. 아이는 남자가 모르는 사이 캐리어를 살짝 열어보고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아이에게 철물점을 찾던 그는 동네 식당에 들어선다. 남자는 식당 주인이 흘린 음식이 캐리어에 묻자 강력하게 손길을 거부한다. 여기서 또 남자는 아이를 마주친다. 아이는 식당 주인의 아들로, 조금 전 자신이 본 걸 엄마에게 알린다.


한편 낯선 이방인의 등장으로 주민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정장을 입고 캐리어를 끌던 살인 용의자의 CCTV 확보됐다는 뉴스를 접한다.마을 주민들은 눈앞의 이방인과 용의자가 같은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경찰까지 대동해 남자를 찾아 나선다.


이들은 땅을 파던 남자를 체포하지만, 캐리어 속에는 인형들과 가족사진뿐이다. 주민들은 오해였음을 깨닫고 사과하으나 남자는 도움을 거절한 채 홀로 남는다.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는 순간, 인형에 마음을 뺏겨 캐리어 옆을 떠나지 못한 아이는 흙 속에 파묻힌 사람의 손가락을 발견한다.


이 영화는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설정을 통해 안전한 일상에 균열을 내는 낯선 존재를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초반부에는 공동체의 과도한 의심과 집단적 편견을 풍자하는 듯 보인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시선, 근거 없는 의혹, 그리고 집단적 폭력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오해와 배척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이야기를 정반대로 틀어버린다. 오해라고 안도했던 순간 진실이 드러나면서, 관객은 불편함과 충격을 동시에 맞닥뜨린다. 감독은 끝내 관객을 안심시키지 않고, 타자에 대한 시선과 진실과 오해의 경계를 오가며 불신과 공포로 끝맺는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것은 식당 주인의 아들의 눈이다. 아이의 말을 철썩까지 믿다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버리지만, 결정적인 순간 아이는 진실을 보게 된다. 블랙 코미디가 서스펜스 스릴러로 장르를 전환하는 순간이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더 이상의 전개를 이어가지 않고 끝내버리며,스릴러 장르 장치를 활용, 결말을 한층 더 섬뜩하게 만든다. 러닝타임 22분.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