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이닉스 VEU 자격 박탈로 장비 도입 건별 허가 필요
낸드·D램 40% 생산 차질 우려, 공급망 재편 가속화
단기 차질 크지 않지만 중장기 업그레이드 제동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을 전격 박탈하며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건별 허가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에 낸드플래시와 D램의 35~40%를 생산하는 시안·우시·다롄 공장의 운영 차질 우려가 커지며 국내 반도체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텔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VEU는 미국이 2022년 10월 중국 반도체 견제 정책의 일환으로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가운데, 특정 기업에게만 허용한 예외 조치였다. 이들 기업은 미국 정부의 개별 허가 없이도 미국산 장비를 중국 공장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약 3년간 지속된 이 특혜가 종료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으로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미 행정부의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 조치는 양사의 중국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의 35-40%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유일한 해외 메모리 생산 거점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의 40%를, 다롄 공장에서는 일부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안·우시·다롄 공장은 모두 한국 내 최첨단 생산라인보다 1~2세대 뒤처진 공정을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반면 중장기적으로는 장비 교체와 라인 업그레이드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점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내 공장의 생산 역량 확대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허가는 하지 않을 의향”이라고 밝혔으며, 전임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도 첨단 반도체는 5% 이하, 레거시 반도체는 10% 미만으로 생산 역량 확장을 제한했던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규정마저 넘어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간 양사는 VEU 덕분에 미국산 장비를 신속히 도입해 수익성을 높여 왔으나, 이마저 막히면서 ‘진퇴양난’에 직면한 상태다.
다만 중국 리스크에 대응해 두 회사는 이미 국내 생산 거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천 M16 공장 생산능력을 월 17만장까지 끌어올려 우시 공장 수준에 근접시켰으며, 내년부터는 우시 공장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일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평택·화성 등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 중이나, 중국 공장 규모를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한편 글로벌 반도체 장비 ‘빅4’인 AMAT, ASML, 램리서치, TEL은 모두 한국에 R&D 및 재제조 센터를 확장하며 국내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대중 규제 강화가 오히려 국내 장비업체와 기존 R&D 거점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VEU 지위 박탈이 실제 생산 차질로 이어지지 않도록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히며, 내년 1월까지 120일간의 유예 기간 동안 세부 집행 기준을 협상할 계획이다. 반도체업계는 이 기간을 활용해 장비 반입 규제의 예외 조치 범위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뒤집기’가 예고하는 것은 단순 규제 강화가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라며 "국내 기업들은 중국 공장 운영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며, 정부와 함께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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