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피해 급증에 은행 무과실 배상 법제화 추진
“은행이 피해 예방 앞장서 왔는데…근본적 해결책이 될지도 의문”
정부가 지난달 28일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금융회사의 배상 책임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정부가 보이스피싱 피해액을 금융권이 전액 또는 일부 배상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은행권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피해 예방에 앞장서 온 은행들이 명확한 책임 범위 없이 무과실 배상 의무를 떠안을 경우, 오히려 금융소비자의 불편과 새로운 사기 범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8일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금융회사의 배상 책임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은행권은 전날 정부 방침 발표 이후 처음으로 소비자 보호 실무자 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나 책임 범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대응책 마련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임원급이 참석한 무거운 회의는 아니었고, 실무 선에서 각 은행 의견을 교환하고 정부안에 대한 세부 논점을 점검하는 자리였다”며 “당장 새로운 대응책을 논의하기보다는 기존 보이스피싱 예방 활동을 강화하는 선에서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책은 기존의 자율적 피해 보상 조치를 넘어 법제화를 통해 강제성이 부여되는 사안이라 부담이 크다”며 “과거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 분담 논의 때도 은행권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길었던 만큼 이번에도 충분히 의견을 반영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은 그간 정부 정책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자체 예산을 들여 보안체계를 강화하고 피해자 지원에 나서왔다.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을 구축해 실시간 지급정지 조치를 취하는 것은 기본이며, 무료 보험 가입 서비스와 자율 배상 제도를 운영해 피해자 보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KB국민은행은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체계를 전면 강화했다. 보이스피싱 전담 인력을 두 배로 늘리고 AI 모니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해 8월 한 달에만도 1300여건, 225억원의 피해를 막았다.
신한은행은 ‘보이스피싱 제로 사업’을 통해 2023년부터 3년간 매년 100억원, 총 30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후원해 취약계층 피해자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무료 보험 가입 서비스를 통해 피해 발생 시 최대 1000만원을 지원한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예방전문기업 ‘씽크풀’과 손잡고, AI 기반의 체험형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 서비스 ‘하마터면’을 WON뱅킹에 제공한다.
하나은행은 AI 기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과 원큐앱 보이스피싱 앱 탐지 기능을 통해 송금·인출을 즉시 차단하고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또 거래 패턴 분석, 고령자 특화 모니터링 등으로 신종 사기 수법까지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은행에게 배상까지 강제하려는 데 대한 반발은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을 뿌리 뽑지 못한 상황에서 말단인 은행에 책임을 지우는 모양새”라며 “배상책임 강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대책으로 은행이 직접적 책임이 없는 피해까지 배상하게 되면 이를 악용한 신종 사기 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피해자를 돕는 것과 직접적인 배상 주체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현재는 구체적인 법안 초안도, 배상 규모나 세부 책임 기준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은행권 입장에서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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