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8일 오후(현지시간) 긴축 예산안과 관련한 신임투표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난해 12월 미셸 바르니에 내각이 긴축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다 불신임 결정으로 붕괴된 지 불과 9개월 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며칠 안에 새 총리를 임명할 방침이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프랑스 하원은 이날 바이루 총리 정부가 제출한 긴축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총리의 신임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총 574명 중 558명이 투표에 참여해 신임 194표, 불신임 364표로 불신임을 결정했다.
하원 재적 의원의 과반수(288명)가 불신임에 찬성하면 총리를 비롯한 내각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바이루 총리는 이르면 9일 오전 마크롱 대통령에게 정부 사퇴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하원 불신임 직후 마크롱 대통령은 며칠 안에 새 총리를 임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바이루 총리는 앞서 지난 7월 국내총생산(GDP)의 6%에 육박하는 재정적자 규모를 2029년까지 3% 아래로 줄이기 위해 공휴일 축소, 복지·연금 지급액 동결 등을 포함한 440억 유로(약 77조 7000억원) 규모의 긴축안을 내놨다.
그러나 국방예산을 제외한 정부지출 동결과 공휴일 폐지안까지 담긴 이 계획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극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등 좌파는 사회적 약자 희생을 강조하며 “역진적(逆進的) 긴축”이라고 맹비난했다. 극우 역시 전기세 인상과 생활비 부담 확대를 이유로 반대했다.
바이루 총리는 지난달 25일 스스로 신임투표를 요청하며 “국민들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직시하게 하겠다”고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이날 신임 투표에 앞서 진행된 연설에서도 “여러분은 정부를 전복시킬 권한은 있지만, 현실을 지울 권한은 없다”며 “현실은 냉혹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지출은 더욱 증가할 것이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부채 부담은 점점 더 무겁고 비싸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야당의 거센 반발에 끝내 긴축안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하고 좌초됐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좌우 어느 쪽도 받아들일 수 없는 긴축안이 정치적 연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이번 불신임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2년 새 다섯번째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23년 여름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사임 이후 가브리엘 아탈, 바르니에, 바이루까지 모두 예산·재정정책 갈등으로 중도 낙마했다. 바르니에 내각은 지난해 12월 사회보장예산을 헌법 49조3항으로 강행 처리하다 야당이 발의한 불신임에 무너졌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 3000억 유로로 GDP의 113%를 넘어섰다. EU내 유로존(유로 사용국)에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재정적자는 GDP의 5.8%로 유로존 평균(약 3.1%)을 크게 웃돌고, 금리상승으로 이자비용도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의 지출 구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경직돼 있다”며 “구조개혁을 미루면 신용등급 추가 강등과 채권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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