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세부 합의 내용 두고 '갑론을박'
美측과 협상 '진실공방'도 난관
전문가들, 외환시장 충격 '신중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트럼프미국 대통령의 방명록 작성 모습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트럼프미국 대통령의 방명록 작성 모습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이재명 정부의 발목을 잡았던 한미 관세 협상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극적 타결됐다. 3500억 달러(약 502조원) 대미 투자 방식을 두고 양국은 줄다리기했지만, 대통령실은 "외환시장에 대한 실질적 부담 경감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성공적 협상이라고 자평했다. 다만 세부 합의 내용을 두고선 "합의문과 향후 시장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라는 신중론이 나온다.
30일 정치권에선 한미 정상회담 계기로 타결된 관세 협상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지지부진했던 협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에 "다행이다"라는 반응이지만, 세부 합의 내용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핵심 쟁점이었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불' 주장과 달리, 2000억 달러는 현금 투자로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방식으로 구성되면서 여권에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야권에선 당초 정부가 현금 투자 비율을 최대 5%(175억 달러) 수준으로 하고 나머지를 대출·보증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방안을 계획했지만, 이와 달리 2000억 달러 모두 부담해야 하는 만큼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지적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논란이 된 '2000억 달러 현금 투자'에 대해 "가장 큰 우려였던 외환시장에 대한 실질적 부담을 크게 경감했다"고 했다. 현금 투자액 2000억 달러의 경우,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고 외환시장이 불안정하면 납입 시기와 금액 조정 요청을 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나아가 투자 약정은 오는 2029년 1월까지이며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외화 자산 운용 수익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여당도 김 실장의 외환시장 충격 감소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분할이라고 해도 현금 투자가 상당 부분 수용된 것은 아쉬움을 나타내지만, 연간 200억 달러 투자 상한을 설정한 것은 우리 외환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특히 여당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규모가 1년에 150억~200억 달러 사이"라는 발언을 들어 이재명 정부의 협상이 성공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총재는 그동안 국내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최대치를 200억 달러로 설정했는데, 정부가 나아가 '200억 달러 상한'을 합의하자 "굉장히 잘 된 협상"이라고 밝혔다.
 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마련된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 사무실 인근에서 열린 긴급 현장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마련된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 사무실 인근에서 열린 긴급 현장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의 주장에 반론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4100억 달러 수준이며 연간 수익률은 5%가량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익을 매년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면 외환 관리 여력이 제한되는 탓에 향후 시장이 불안정할 경우 외환시장 관리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외환시장과 환율 관리의 부담이 매우 커졌다"며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지금 4100억 달러 수준이고 연간 수익률이 5% 안쪽인데, 200억 달러를 매년 미국에 보낸다면 외환 관리의 여력 자체가 매우 제약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자체만으로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고, 만약 환투기 세력이 여기에 붙게 되면 외환시장 관리가 매우 불안정해질 우려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선불이 일부 할부금으로 바뀐 것 말고는 총금액은 그대로 유지됐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연 200억 달러 투자 논란 이외에도 총투자액 감액 실패, 수익 배분 구조 불리, 투자 대상 선정 기준 불투명 등 문제도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정치권의 공방은 과열되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수익 배분 구조를 두고 당초 우리 정부가 9대 1로 90%를 가져오는 것으로 주장했지만 관철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실제 5대 5로 배분 구조가 설정된 탓에 한국은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김 실장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국과 미국이 각각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지만, 한국이 일정 기간(20년) 내 원리금을 상환받지 못하면 수익 배분 비율 조정이 가능하도록 서로 양해했다"며 "원래 희망했던 숫자를 명확하게 넣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 문구를 통해 우리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이익 배분 장치가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통령실은 관세 협상 성과를 의심하며 합의 내용을 공유하라는 야당의 불신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지만, 핵심 문제는 미국 측으로부터 불거진 상황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이번 협상 결과를 두고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은 자기 시장을 100% 완전 개방하는 데도 동의했다" 등 우리 정부 발표와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이에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한국은 이미 모든 미국산 상품에 대해 시장이 개방돼 있다"며 "반도체 경쟁국인 대만과 동등한 입지를 확보해서 불확실성을 제거한 협상 결과라고 볼 수 있고, 발표 내용은 양측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한미 불협화음에 의심을 보내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미국에선 우리의 발표 내용과 다른 입장을 하나씩 이야기하고 있다"며 "만약에 미국에서 발표한 내용과 우리의 발표 내용이 달라진다면, 결국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다가 더 큰 문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김용범정책실장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정책실장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도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연 200억 달러 현금 투자로 인한 우리 외환시장 충격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다르지만, 정부가 세밀하게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은 동일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대미 투자 총액인 3500억 달러를 줄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선방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연 200억 달러씩 10년 이상 미국에 투자했을 때, 우리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업은행이 200억 달러 정부 보증채를 발행하는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가 매년 국채 발행 순증액이 최소 80~90억 달러로서 200억 달러는 발행액에 3분의 1에 해당한다"며 "정부 보증채를 모두 외국인이 인수하면 좋지만,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국민연금이나 한국투자공사 등 기관이 떠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잘 안된다면 외환 시장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 것도 아니고 가변적인 상황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 수출이 어려워져 흑자가 감소하면 외환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화자찬하는 것도 악수라고 비판하는 것도 옳은 판단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초 선불이 언급됐다가 분할 납부로 10년간 200억 달러로 정해졌는데, 전체적으로 우리의 취약한 부분은 (해소된 것 같고) 마지막 벼랑 끝에서 극적 타결이 이뤄졌기 때문에 중간 지점에서 최대한 합의점을 찾으려고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된 상황에서 향후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해 "이제 세팅은 됐고 앞으로 잘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며 "이제 산업 구조와 대외 통상 무역을 '해외 직접 투자'로 전환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에 아마존 등 기업이 투자하는 상황인 만큼 '아웃바운드' 투자와 함께 '인바운드'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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