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뉴욕서 '2025 CEO 인베스터데이' 개최… 해외 첫 사례
최대 시장 의지 굳건… 美 법인장 당시 쌓은 '위기 대응' 체력
관세·보조금 폐지 악재 속 '투자' 강조… 4년간 36조 쏟는다
"美, 가장 성장할 시장… 현지화율 높이고 GM 등 협력 확대"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이 뉴욕 한복판에서 미국 시장에서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차 창립 이래 첫 외국인 최고 경영자(CEO)이자, 미국 법인을 총괄하며 외형 성장을 이끈 인물인 만큼 미국 시장 변수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뇨스 사장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더 셰드'에서 열린 '2025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현재 후퇴하는 시장은 없고, 성장세를 유지하는 시장은 한 곳에 그친다"며 "미국에선 계속 성장 중이고, 성장의 기회가 계속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인베스터 데이를 미국에서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베스터 데이는 현대차의 중장기 전략과 재무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로, 지난 2019년부터 글로벌 투자자, 애널리스트, 신용평가사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다.
현대차가 인베스터 데이를 뉴욕에서 개최한 이유는 이날 발표된 내용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무뇨스 사장은 이날 미국 시장에서의 위기를 돌파하고, 기회를 포착하겠다는 발언을 연신 반복했다.
최근 관세 및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 위기에 맞닥뜨린 상황이지만, 현대차의 최대 판매국이자 최대 수익 시장인 만큼 이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친 셈이다.
게다가 이번 행보는 무뇨스 사장이 현대차의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이자, 북미 시장에서 현대차의 외형성장을 이끈 주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2019년 5월부터 작년까지 북미권역본부장 겸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부임했던 무뇨스 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반도체 부족 수급 부족 사태, 차량 도난 파동,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현대차의 미국 연간 판매량을 80만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무뇨스 사장은 "앞으로 현지화율을 가장 크게 늘릴 기회는 미국에서 있을 것"이라면서 "북미는 현대차의 가장 큰 시장이고 성장할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무뇨스 사장이 미국에서의 위기 돌파로 꺼내든 카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현지 생산 확대'와 GM 등 '현지 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기회 창출이다.
현대차는 올해부터 2028년까지 향후 4년 동안 그룹 차원으로 미국 시장에 260억 달러(약 37조원)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가 1986년 미국 시장 첫 진출 후 현재까지 북미 권역에 205억 달러(약 28조원)를 투자해 왔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제철소 건설, 로봇 공장 신설 등 다양한 투자 분야가 있지만, 당장 주력하는 것은 현지 생산량 확대다. 관세로 인한 타격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중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량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방침으로, 미국 내 두 생산기지인 앨라배마 공장과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가동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특히 HMGMA의 생산 능력을 현재 30만대에서 2028년 50만대까지 확대해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에 집중한다는 목표다.
무뇨스 사장은 "80%의 현지 생산은 매우 중요하다. 더 많은 성장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에 올해 약 100만대 생산을 예상하고 있고, 추후에는 더 많은 기회를 보고 있다"며 "제네시스 GV70을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 중인데,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생각했을때 제네시스의 성장 기회가 큰 시장이기 때문에 제네시스 차량이 미국에서 더 많이 생산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집중된 투자와 한국 생산량 저하 우려와 관련해서는 '성장'에 집중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무뇨스 사장은 미국 현지 생산 비율을 높인다 하더라도 글로벌 주요 시장으로 한국 생산 물량 납품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관세 등으로 미국 수익성이 낮아지는 것을 우선적으로 방어해야한다는 의미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직원들에게 항상 '한국에서의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시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성장을 해야하는 것이고, 미국에서 파는건 미국에서 생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연방 금리가 낮아졌는데, 그러면 수요가 올라가기 마련이고, 북미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다. 그러면 다른 시장에선 한국생산을 더 원할 것"이라며 "당연히 미국 물량은 미국에서 현지 생산을 하고, 다른 시장은 한국 생산량을 활용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 "울산 생산량을 20만대 높이고 있다. 노조와도 좋은 합의를 이뤘다"며 "생산량 이전이 아니라 성장이다. 제네시스는 50% 이상, 전체적으로 30% 이상 (성장했다). 긍정적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의 가격 정책과 관련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임을 다시 한 번 시사했다. 아직까지 25% 수준의 관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경쟁사 가격 정책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했다. 신차, 신기능 도입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관세가 있다고 해서 당연히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건 고려하지 않는다. 경쟁사를 보고 따라하진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모델, 새로운 기능 등에 따라 새로운 가격 전략을 도입할 수도 있고, 가격 인센티브를 유연하게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GM, 웨이모, 아마존 등 현지 업체와의 협력은 미국 시장에서 또 다른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돌파구'로 활용할 방침이다. GM은 자동차, 웨이모는 자율주행, 아마존은 판매 네트워크에서 협력한다.
특히 GM의 경우 최근 현대차와 접점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협력 분야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현지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의 콘퍼런스에 참석해 공동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최근 GM과 중남미 시장 대응을 위한 중형 픽업, 소형 SUV, 소형 승용, 소형 픽업 4종과 북미 시장용 전기 상용 밴 등 5개 차종을 공동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해당 차량들의 양산이 본격화되면 연간 80만대 이상의 생산 및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무뇨스 사장은 "GM 프로젝트는 굉장히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얼라인먼트다. 정의선 회장님과 메리 바라 GM 회장이 얼라인 됨으로써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며 "시너지 창출해야 한다. 우리 정책은 단순하다. 주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다. 모든 걸 다 합치겠다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협력, 물류 등을 공용화하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를들어 현대글로비스를 GM이 활용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GM도 타국으로 수출할 때 물류 회사가 필요할 것"이라며 "현재는 폭넓은 협업 기회를 찾고 있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현대차는 2030년 글로벌 자동차 판매 555만대 달성 목표를 유지하고, 이 중 330만대를 친환경차로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5년 동안 77조30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2030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 8~9%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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