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문직 비자 받으려면 수수료 1인당 年 1억 4000만원씩 내라”

김상도 기자 (marine9442@dailian.co.kr)

입력 2025.09.20 09:55  수정 2025.09.20 10:03

트럼프, H-1B 비자 발급 개편 포고문 서명

IT업계·韓 유학생·기업 ‘직격탄’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19일(현지시간)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현행보다 100배 많은 1인당 연간 10만 달러(약 1억 4000만원)로 대폭 인상했다. 특히 이번 조치는 H-1B 비자 발급을 어렵게 해 미국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만큼 한국인 전문 인력과 한국 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H-1B 비자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전문직 비자의 신청 수수료는 현재 1000달러 미만인데, 이를 10만 달러로 대폭 올리는 것이다. 더욱이 이 금액은 1인당 1년치이며, 체류기간 매년 같은 금액의 수수료를 내고 갱신해야 한다.


포고문은 H-1B 제도가 “미국민 노동자를 대체하는 저임금 고용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고 규정했다고 미 백악관은 밝혔다. 특히 정보기술(IT) 업계와 아웃소싱(업무 위탁) 업체를 지목하며, 이들이 미국인 직원을 해고하고 저임금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행태를 “경제·안보 위협”으로 명시했다.


미 정부는 IT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과 동시 H-1B 승인 급증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문제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한 소프트웨어 업체는 2025 회계연도에 H-1B 5000건 이상 승인을 받은 반면 같은 시기 1만 5000명을 해고했다는 것이다.


H-1B 제도는 1990년 도입돼 미국 기업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학사 학위 이상을 가진 외국인 전문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취업비자다. 해마다 발급 쿼터는 6만 5000개, 미국 석·박사 학위자에게는 2만개의 추가 쿼터가 배정된다. 기본 3년 체류가 허용되며, 연장도 가능하고 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다.


모두 8만 5000개 비자가 매년 봄 추첨으로 배정되지만, 일부 기업이 대량 신청을 통해 제도를 악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대형 IT 기업과 달리 일부 인력 파견·아웃소싱 업체는 간접적으로 저임금 노동자를 채용하는 방식으로 비자를 활용해, 해마다 신규 비자의 절반가량을 가져간다는 지적을 받았다.


포고문은 이 같은 연간 쿼터제 자체를 없애지 않았다. 다만 2026 회계연도 추첨부터는 지원자가 반드시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추첨 및 비자 발급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조건을 강화했다. 기존에는 추첨 등록비 215달러와 청원서 비용 780달러 등 합산 1000달러 미만만 부담하면 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100배 인상된 비용이 ‘진입 장벽’으로 추가된 셈이다. 이 금액은 1인당 1년치이며, 체류 기간 해마다 같은 금액의 수수료를 내고 갱신해야 한다.


포고문 서명식에 배석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처음이나 갱신 때나 회사는 이 사람이 정부에 10만 달러를 지급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심은 연간이라는 것이다. 6년까지 적용되며 연간 10만 달러를 낸다는 것”이라며 “해당 인물이 회사와 미국에 매우 가치 있는지, 아니라면 (이 사람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회사는 미국인을 고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미국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인 전문 인력과 한국 기업에도 직접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22 회계연도 기준 한국 국적자가 발급받은 H-1B 비자는 2100건가량으로 전체 승인 건수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수료 급등과 임금 기준 강화는 한국인 지원자들의 진입 장벽을 크게 높일 전망이다.


미 대학을 졸업한 한국 유학생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STEM 전공 졸업 후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졸업 전후 최대 12개월 동안 전공 관련 분야에서 취업할 수 있는 제도. STEM 전공자는 24개월 추가 연장이 가능해 최대 36개월까지 체류·취업 가능)를 거쳐 H-1B로 전환하는 경로가 많았으나, 앞으로는 고임금 제안을 받지 못하면 승인이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 진출 한국 기업의 현지 운영도 부담이 늘어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 내 연구·개발(R&D)센터와 생산거점을 확대하고 있는데, 본사 엔지니어 파견이나 신규 프로젝트 인력 배치가 까다로워질 수 있다. 비자 확보 지연이나 비용 증가로 인해 프로젝트 일정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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