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자 시대의 문턱, 왜 지금 양자과학기술이 중요한가?

유진상 기자 ()

입력 2025.09.21 10:55  수정 2025.09.21 10:56

최형일 숭실대 명예교수. ⓒ

우리 주변 세상은 고전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예를 들어, 사과가 땅에 떨어지고, 주전자에서 끓는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계, 즉 원자나 전자 같은 미시 세계에서는 우리가 아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과학자들은 이 미시 세계에서 물질이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결과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탄생했다. 2025년은 양자역학이 세상에 알려진 지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양자과학기술 산업이 미래 핵심 동력으로 주목받으며 각국이 연구와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 그리고 양자란 무엇인가?


거시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크고 무거운 물체들의 영역으로, 고전 물리학의 법칙이 잘 들어맞는다. 자동차가 움직이거나 공이 날아가는 현상은 연속적이고 예측이 가능하다. 반면, 미시 세계는 원자, 전자, 광자(빛 입자) 등 매우 작은 단위로 이루어져 있어 양자역학 없이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고 오직 확률적으로만 파악 가능하다.


예를 들어, 원자 속 전자는 행성처럼 원자핵 주위를 일정 궤도로 도는 게 아니라, 핵 주위에 확률적으로 퍼져 '전자구름'을 형성한다. 이는 마치 선풍기 날개가 빠르게 회전하면 날개 각각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고 원형의 흐릿한 면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또는 어둠 속 들판을 떠다니는 반딧불이들이 특정 구역에 더 자주 몰리는 원리와 같다. 양자는 이렇게 불연속적이고, 위치도 확률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양자의 핵심 개념이다.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중첩, 얽힘, 불확정성


중첩이란 양자가 여러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원리다. 거시 세계에서는 공이 굴러갈 때 왼쪽 또는 오른쪽 경로 중 하나만 선택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공이 왼쪽과 오른쪽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동전을 던져 공중에 떠 있는 순간, 앞면과 뒷면 중 하나가 아닌, 두 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즉, 중첩은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열린 상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양자 컴퓨터는 여러 경우의 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얽힘은 두 개 이상의 양자가 서로 강하게 연결돼 하나의 양자 상태를 알면 다른 양자들의 상태도 즉시 알 수 있음을 뜻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입자들이 하나처럼 묶여 있다. 예들 들어, 서울과 뉴욕에서 각각 한 개의 주사위를 굴렸는데, 한 쪽에서 3이 나오면 다른 쪽도 즉각 3이 확정되는 것과 같다. 이런 얽힘 현상은 양자암호 등 통신보안 기술에 활용돼 해킹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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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정성 원리는 양자 입자의 위치와 속도(운동량)를 동시에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위치를 정확히 알수록 속도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속도를 정확히 알면 위치가 불확실해진다. 이는 파도의 위치(꼭대기 위치)를 잘 잡으면 파도의 진행방향과 속도는 흐려지고, 반대로 파도의 파장과 진행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면 그 순간 파도 꼭대기 위치는 분명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원리는 측정 도구의 한계가 아니라 자연 법칙이며, 양자 입자를 점이면서 동시에 파동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자과학 기술이 산업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


양자역학은 이미 현대 반도체 및 레이저 등 핵심 소자 개발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최근 각광받는 양자과학 기술은 정보처리 방식에 양자 특성을 적용해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을 이끌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중첩과 얽힘 원리를 활용해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계산이 가능하다. 특히, 여러 경우를 확인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에 매우 효과적이다. 기존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 상태만 가진 비트(bit)를 기본 단위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전구가 켜져 있으면 1, 꺼져 있으면 0으로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구는 꺼짐과 켜짐을 동시에 가질 수 없듯, 비트도 한 번에 하나의 상태만 표현한다. 반면에 양자컴퓨터는 큐비트(qubit)를 기본 단위로 사용한다. 큐비트는 중첩 원리에 의해 0과 1의 값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 중첩 특성은 큐비트가 여러 개 모일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예컨대, 비트 두 개를 합치면 00, 01, 10, 11 네 가지 상태 표현이 가능하다. 각 비트는 한 순간에 하나의 값만 가지므로, 두 비트 조합은 네 가지 상태 중 한 가지 경우만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네 가지 상태를 확인하여 답을 구하는 문제를 풀 때, 기존 컴퓨터는 두 비트가 표현하는 각 상태를 차례로 확인하여 답을 구한다. 반면에 두 개의 큐비트는 조합은 얽힘 원리에 의해 한 몸이 되고, 또 중첩 원리에 의해, 00, 01, 10, 11 네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덕분에 양자 컴퓨터는 한 번 연산으로 모든 경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효율성과 처리 속도를 크게 향상시킨다. 이러한 효과는 큐비트 개수가 많아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수많은 경우의 수를 병렬적으로 처리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기존 컴퓨터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에서 빠른 해결을 구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는 신약 개발이나 암호 해독 같은 분야에서 혁신적 가능성을 열고 있다.


또한 양자통신은 절대 뚫을 수 없는 보안망을 가능케 한다. 불확정성과 얽힘 원리를 이용해 도청 시도가 있으면 즉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누군가 봉투 속 편지를 훔쳐보면 그 흔적이 반드시 남는 것과 같고, 두 양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도청자가 끼어들면 얽힘이 깨지고 누가 간섭하고 있음이 바로 탐지되는 원리다. 따라서 양자 상태로 정보를 주고받는 양자통신 기술은 국가 기밀 보호, 금융 정보 보호 등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유럽에서는 이미 양자암호 통신망 구축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국가 안보와 금융 인프라에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양자센서와 미래 기술


양자센서는 양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발생하는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초정밀 센서 기술이다. 중첩 원리를 이용해 한 번에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어, 환경의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않고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얽힘 원리, 즉 두 개 이상의 양자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하나가 변하면 다른 하나도 즉시 영향을 받는 원리를 활용해 여러 센서를 연결하면 민감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이는 마치 여러 귀를 동시에 쫑긋 세워 작은 속삭임도 듣는 것과 같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양자센서는 기존 센서로는 불가능했던 정밀 측정을 가능케 한다. 예를 들어, 미세한 약물 농도 및 암세포의 극미량 변화를 잡아내고, 자율주행과 우주과학에서 요구하는 극한의 위치 및 시간 정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


현실과 미래, 한국의 도전


2025년 현재 양자과학 기술은 실험 단계를 넘어 상업적 응용과 산업 도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전환점을 맞았다. 올 해를 양자산업의 원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이 양자과학 기술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IT 기업들은 금융, 신약, 에너지 분야에서 양자컴퓨터기반 시뮬레이션을 시범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도 2030년까지 국가 전략인 '양자 10년 로드맵'을 통해 인재 양성, 기반 인프라 구축, 산학연 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보완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술적으로는 큐비트 제어, 오류 정정, 안정성 확보, 그리고 실용적인 알고리즘 개발 등 여러 난제가 남아 있다. 현재 오류율이 높고 유지비용도 큰 데다, 실용적인 성능을 확보하는 것도 아직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 환경 측면에서는 표준화와 개방형 생태계 구축이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양자 분야의 전문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아울러, 상용화된 모델이 제한적이고 단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도 어려워 산업 전반에 걸쳐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양자, 미래를 여는 열쇠


양자과학 기술은 우리 일상에 아직 친숙하지 않지만, 거대한 산업 혁신과 생활 변화의 잠재력을 품고 있다. 과학자들이 오랜 연구로 밝혀낸 양자 세계의 비밀이 이제 현실의 문제를 푸는 중요한 해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자의 신비와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하며 사회적 준비를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입자가 만들어내는 큰 변화의 문턱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약력>

최형일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전) 숭실대 IT대학 학장

(전) 숭실대 정보과학 대학원 원장

(전) 컴퓨터사용자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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