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국민성장펀드 시동… 첨단산업 육성 마중물
직접·간접투자부터 초저리 대출까지… 자금 배분 청사진
뉴딜펀드 전철 피할까… 저조한 수익률·재정부담 우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내세워 금융권의 자금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에서 혁신기업·신성장 산업 지원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지만, 현장의 우려도 적지 않다. 데일리안은 [은행카오스] 시리즈를 통해 생산적 금융의 개념과 정책 방향, 그리고 그 파장과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기업의 투자 자금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코스피 5000 시대에 발맞춘 금융 대전환을 선언했다. 생산적 금융을 구체화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150조 국민성장펀드’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건드렸다가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역풍을 경험한 바 있다. 이번에는 경제성장을 견인할 기업 투자를 금융정책 전면에 내세웠다. 대규모 정책자금을 투입해 투자수요를 견인하게 하는 것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개최해 산업계 등 금융 수요자 중심으로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그간 금융권 위주의 논의체계에서 벗어나 혁신 과제를 발굴하기 위함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생산적 금융 대전환 1차 회의’를 열고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위해 정책금융, 금융회사, 자본시장의 3대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1차 회의 개최와 함께 금융 대전환을 위한 3대 전환, 9대 과제를 발표했다. ▲정책금융 ▲금융회사 ▲자본시장의 전환을 위해 각기 3개의 세부과제를 마련해 추진한다.
특히 정책금융인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미래 첨단전략산업에 ‘150조원+ɑ’를 집중 투자하고 이를 통해 시중자금을 기업 투자로 전환을 시도한다.
금융위는 AI 등 첨단전략산업을 두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범정부차원의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글로벌 산업구조는 AI를 중심으로 재편·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5년간 500조 투자수요… 국민성장펀드, 첨단산업 도약 견인
첨단전략산업에는 약 400조원 규모의 자금 투입이 필요하며, 산업계 전반의 AI 전환을 고려할 때 5년간 500조원의 투자수요를 예상하고 있다.
전체 투자 수요 500조원 중 150조원(30%)을 정책금융인 ‘국민성장펀드’가 선도해 투자를 촉진하는 견인책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그간 우리 경제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해 왔지만 중국 등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됐다.
제조업 성장기 초반에도 국가 주도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돼 진행된 것처럼, 첨단산업으로의 전환기에 정책자금으로 해당 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성장펀드는 산업은행에서 출연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과 금융회사·연기금, 국민펀드를 조성해 만드는 민간·국민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된다.
첨단전략산업기금은 정부보증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를 유치하고 채권이자를 부여하고, 민간·국민에서 투입된 자금은 투자이익으로 환원한다.
금융당국은 AI 등 첨단전략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수소 ▲미래차 ▲바이오 ▲인공지능 ▲방산 ▲로봇 등 10개 산업에 ‘규제·세제·재정·금융·인력양성’ 등을 통합 패키지(메가프로젝트)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R&D, 중소·중견·장비·설계 기업, 에너지 인프라, 해외진출·구매자 금융 등에 포괄적으로 자금 지원에 나서 생태계를 조성하며, 수도권 중심이 아닌 지역 우대 정책으로 소멸위기인 지역의 성장도 함께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성장펀드의 재원을 산업별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도 나왔다. 메가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자금을 지원하되 산업별로 성장세를 고려해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AI에 30조원 이상을 공급한다.
직접투자·국민펀드·인프라·초저리대출… 150조 세부 배분안
국민성장펀드의 산업별 배분안을 보면 크게 ▲직접지분 투자 ▲간접투자(국민참여펀드, 장기기술투자) ▲인프라 투·융자 ▲초저리 대출로 나뉜다.
직접 지분투자는 15조원이 투입된다. 기업-첨단기금 간 합작 법인을 만들어 제조공장을 건설하고 국내외 기술기업의 M&A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산은이 주도하는 첨단기금이 지분투자와 인수금융을 지원하고, 첨단산업기업은 인수자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35조원 규모의 간접투자도 진행된다. 산은의 첨단기금과 민간자금(은행, 연기금, 퇴직연금)이 공동으로 ‘국민참여형 펀드’와 ‘초장기 기술투자 펀드’를 조성한다.
국민참여형 펀드는 21년에 진행된 ‘국민참여뉴딜펀드’의 선례를 참고해 재정 후순위 보강과 세제혜택을 넣어 국민들이 첨단산업의 성장에 따른 이익을 공유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초장기기술투자의 경우 민간참여가 어려워 기금의 출자를 마중물로 민간자금이 매칭될 수 있도록 지분투자를 추진한다.
AI는 데이터기반 산업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반도체 등도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해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인프라 투자와 융자에 50조원을 들여 전력망을 비롯해 발전·용수시설을 구축한다.
마지막으로 50조원은 첨단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와 R&D 등을 위해 2%대 국고채 수준의 ‘초저리대출’에 쓰인다.
관제펀드의 늪 되풀이되나… 뉴딜펀드 선례에 쏠린 눈
금융위가 그리는 150조원 청사진은 크고 아름답지만, 그간 정부주도로 만들어진 관제펀드가 사실상 매번 실패로 돌아가면서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이다.
75조원에 달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은 정부보증채권을 발행해 마련한다. 나머지 75조원도 연기금과 정부재정을 토대로 민간의 투자를 끌어오는 구조다. 모두 정부가 나중에 갚아야 할 빚으로 돌아오게 된다.
‘150조’라는 큰 금액을 강조하는 국민성장펀드가 문재인정부 당시 ‘뉴딜펀드’의 선례를 참고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뉴딜펀드는 정부 재정으로 손실을 흡수하는 구조로, 이재명 정부에서 추진하는 확장재정 정책과 맞물려 더 큰 재정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새로운 금융정책에 따른 금융상품이 시장에 나왔지만, 저조한 수익률로 ‘관제펀드’라는 오명으로 불렸다.
정책 어젠다를 드높이는 수단일 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니 처음 예상했던 펀드 수익률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선 정부들이 추진한 펀드들도 정책 기조에 발맞춰 ‘반짝 성과’ 낸 뒤 꾸준한 수익률을 내지 못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펀드’는 정권 초반 연 평균 수익률이 50%였지만, 2011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는’ 개성공단 폐쇄로 수익률이 급락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참여 뉴딜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 조성돼 4년 만기를 마친 펀드들의 수익률은 평균 5~6%에 그쳤다.
이에 못 미치는 펀드도 있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IBK 국민참여정책형뉴딜 혼합자산투자신탁2호’ 상품의 경우 최근 1년 수익률은 –0.11%이며, 설정일(2021년 12월) 이후 수익률은 15.58%다. 4년의 수익률로 환산하면 3.8%정도다.
2021년~2025년 평균 은행 금리가 연 2.5~3.5%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4년간 수익률이 5%에 그쳤다는 것은 예금보다는 높지만, 위험 대비 초과수익은 크지 않은 셈이다.
이전 관제펀드의 선례를 벗어나지 못하면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수단에 그치며 결국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생산적' 혁신 기업에 돈 대라는데...연체율은 어쩌나[은행카오스③]>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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