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변성현 감독이 완성한 치밀한 풍자의 세계 [30th BIFF]

데일리안(부산)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9.26 08:49  수정 2025.09.26 10:14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을 거치며 자신만의 스타일리시한 세계를 구축해온 변성현 감독이 이번에는 더 대담하고 노련해진 연출로 돌아왔다.


‘굿뉴스’는 1970년 실제 요도호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역사적 사실에 허구와 상상력을 덧입은 작품이다. 항공기 납치라는 극한의 상황을 배경으로 권력과 언론, 정치가 얽히며 만들어내는 혼돈을 블랙코미디 톤으로 풀어내,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안긴다.


트루먼 셰이디라는 인물의 “진실은 뒷면에 있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라는 다소 엉뚱하고 낯선 명언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덴지(카사마츠 쇼 분)가 이끄는 일본 공산주의 단체가 여객기를 납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한국 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 분)은 이 혼란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기회로 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 아무개(설경구 분)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객기를 한국에 착륙시킬 것을 명한다. 아무개는 야망에 갈증을 느끼는 젊은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 분)을 앞세워, 주파수를 조작해 공산주의 단체에게 남한 공항을 평양이라고 속이고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작전을 꾸민다.


성공하면 박상현은 권력을 갖게 되고 서고명은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실패하면 모든 책임은 혼자 서고명이 뒤집어쓰게 된다. 여기에 박상현의 성공을 저지하려는 비서실장과,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허겁지겁 한국으로 넘어온 일본 운수정무차관 신이치(야마다 타카유키 분)가 얽히며 사건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항공기 납치라는 비상 상황은 어느새 권력 다툼의 무대로 변한다. 인질의 생명보다 권력의 향방이 중요한 인물들은 눈앞의 상황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용한다. 정부와 언론, 관료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사건을 점점 우스꽝스러운 방향으로 몰아가고, 영화는 그 과정에서 허술한 외교와 관료주의의 민낯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일본, 한국, 북한, 미국까지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영화는 사건과 관계된 인물들을 폭넓게 그려낸다. 풍자의 화살은 특정 집단에만 향하지 않고 모두에게 고르게 꽂히며, 권력의 민낯을 해부한다. 변 감독은 심각한 국면일수록 힘을 빼는 연출이나, 경쾌한 음악을 배치했다. 긴장과 웃음이 교차하는 흐름 속에서, 변성현 감독은 속도감과 완급 조절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영화의 에너지와 장르적 쾌감을 끝까지 밀도 있게 끌어올린다.


극 중 필요할 때마다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아무개는 정보기관과 정부 인사들 사이를 오가지만, 누구와도 섞이지 않는 독립적인 결을 지닌 인물이다. 설경구는 카메라 렌즈를 직접 응시하며 연극적인 요소를 살린 과장된 연기를 통해, 극의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묘한 존재감을 완성했다. 홍경은 작전의 중심에 세워진 공군 중위 서고명으로 분해, 책임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을 그린다. 진지한 상황 속에서도 코믹한 톤을 유지하는 영화의 색깔에 맞춰, 긴장과 유머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캐릭터의 매력을 살렸다.


류승범은 권력의 설계자이자 정치적 야심가 박상현으로 분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간니발' 시리즈로 국내에 얼굴을 알린 카사마츠 쇼는 냉혹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리더 덴지를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진지한 신 속에서도 순간순간 터지는 유머를 통해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일본 측 서사의 중심축을 탄탄히 세운다.


이외에도 국내외 쟁쟁한 배우들이 특별 출연으로 등장해 짧지만 강한 존재감을 남긴다. 숨은 카메오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영화가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극 중 인물들이 사건의 진실을 포장하고 조작하는 모습이 영화 자체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데 있다. 관객은 단순히 인물들이 꾸며낸 사건을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변성현 감독이 던져놓은 미끼를 덥석 물게 되면서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진실의 덫 속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장치는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며,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진실인지, 이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만든다. 10월 17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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