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장사’에서 ‘집 장사’로…민참사업 확대 적극 추진
사업방식·기능·재무건전성 초점 맞춘 조직 개편 화두
역량 강화·전문성 제고 필수...인력·재원 확보 ‘과제’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변화의 기로에 섰다. 지난 7일 발표된 ‘9.7 주택공급 대책’으로 그동안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해 수익을 올려 온 사업 구조가 직접 시행으로 전환되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혁 주문으로 조직도 개편될 처지에 놓였다. 160조원이 넘는 부채로 재정 부담이 큰 상황에서 역할과 조직의 변화라는 큰 파고를 맞은 LH가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로 삼을지 주목된다. LH의 위기와 기회, 변화와 개혁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공공주도의 주택 공급 핵심 주체로 내세우면서 조직 개편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땅 장사에 머물렀던 LH가 이제는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집 장사로 거듭나야 하지만 기존 인력과 조직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지속 제기되기 때문이다.
사실 LH 개혁 논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가 주거 정책의 핵심 실행기관임에도 정권 교체기마다 개혁 1순위로 지목돼 왔다. 성공적인 LH 개혁을 위해서는 조직 역량 강화와 전문성 제고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직접 시행 및 공급까지…‘LH 자이’ 붙인 아파트도 늘려
정부가 지난 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9.7 주택공급 대책’ 방안에 따르면 LH는 민간에 분양하려던 공동주택용지 등의 매각을 중단하고 오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 6만 가구를 착공한다. 이 중 5만3000가구는 LH가 민간에 땅을 팔지 않고 직접 시행하는 주택으로 나머지 7000가구는 용적률 상향 등 토지이용 효율화 등을 통해 공급하는 물량이다.
특히, LH가 직접 시행하는 공공택지 부문(37만2000가구) 에서는 민간 건설사와 협력하는 민간참여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LH가 시행하지만 민간건설사가 설계·시공·분양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자이’나 ‘더샵’ 등 민간 브랜드를 단 고급 수준의 공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다.
LH는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규모인 3만 가구 규모로 민참 사업을 추진했는데 하반기 주택 5000가구를 추가로 공급해 민참으로 총 1만8000가구 착공을 추진할 예정이다. LH는 지난 25일 경기남부지역본부에서 ‘LH 민간협력 거버넌스 포럼’을 열고 이같은 계획을 밝혔다.
5100가구 조성 사업비는 1조2000억원 규모로 주요 사업지는 ▲남양주 왕숙(1082가구) ▲부천 대장(574가구) ▲인천 계양(1216가구) 등 3기 신도시와 더불어 수원 당수(2309가구) 등 4개 지구 8개 블록이다.
LH는 8개 블록을 3개 패키지로 묶어 내달 사업자를 모집하고 오는 12월 선정해 공사에 돌입한다. 9.7 주택공급 대책 이후 민참은 모두 ‘도급형’으로 바뀌며 건설사는 시공 이윤만 받을 수 있다. 대신 미분양은 LH가 떠 안으며 민간 사업자의 참여 유도를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지급보증 상품을 마련했다.
세부적인 계획은 지난달 출범한 LH개혁위원회를 통해 연내 발표한다. LH 측은 “민참 사업을 확대하면 자금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난해 2만4000가구, 올해 3만가구 등 공급을 늘려 민참 물량을 확대해 왔는데 매년 4만 가구 이상 공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택지 매각 대신 개발·임대에 맞춘 사업구조로
LH가 공적 역할이 강화되고 주택 공급까지 떠맡으며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공격적인 LH개혁을 주문한 만큼 LH의 사업 방식부터 기능, 재무 등 다방면에서의 개혁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현재 LH 개혁위는 LH의 공공주택 사업 구조와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개혁 방안 마련을 위해 매주 2차례 논의를 이어 나가고 있다.
특히 LH의 핵심 수익구조였던 택지 매각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자체 개발·임대 수행에 초점을 맞춰 조직을 개편할 것으로 보인다. LH는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할 때 발생하는 적자를 택지를 조성해 민간에 매각하는 수익으로 상쇄하는 ‘교차 보전’ 체계로 운영돼왔다.
다만 LH가 택지 매각을 포기하게 되면 공공임대주택 건설·운영 자금 등 재원 확보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
LH개혁위원회 민간 공동위원장을 맡은 임종만 세종대 교수는 이달 초 국회 토론회에서 이를 지적하며 LH를 ▲택지 조성 및 주택 건설을 맡는 ‘LH’ ▲미매각 택지와 공공주택을 운영하는 ‘토지주택은행’ ▲공공주택 입주자 생활 서비스와 주거 급여 배분을 담당하는 ‘주택관리공단’으로 기능별로 분리하는 3분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LH개혁위는 대국민 자문단 등 의견 수렴을 통해 이르면 내년 초 대규모 사업 조직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LH의 직접 시행 능력과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사가 전 과정에 참여한 경우와 민참 사업에 입찰해 시공만 맡는 경우는 상품 완성도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며 “민간 주택과는 자재나 설계 구조가 달라 분양가 인하에도 한계가 있고 최근 중대재해 처벌 강화 기조로 안전관리 비용까지 늘어나 시공사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직이 되려 비대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LH 직원은 7628명으로 이 중 주택사업 인력은 962명(12.4%)에 불과하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LH가 10만 가구를 직접 개발할 경우 추가 인력만 3000명 이상이 필요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LH 땅투기 사태에 대한 투명성 문제와 직접 시행 확대, 막대한 부채 등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며 “섣부른 개혁보다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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