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 지연 등 서민 돕는다지만
신용평가 빈틈 생기자 건전성 '빨간불'
"연체 이력 삭제한다고 신용 회복 아냐"
정부의 대규모 신용사면 조치로 금융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연체된 빚을 모두 갚은 서민과 소상공인의 신용 기록을 회복시켜 경제 활동 복귀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지만, 연체 이력이 일괄 삭제되면서 은행들의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려서다.
특히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 문턱을 높여야 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금융사들은 차주의 상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깜깜이 심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0일 연체채무를 전액 상환한 서민과 소상공인에게 신용사면을 단행했다.
이번 신용사면 대상자는 최대 370만명으로 지난 2020년 1월부터 올해 8월 사이 5000만원 이하의 빚을 연체했다가 전액 상환한 개인 및 개인사업자 257만7000여 명의 연체 이력이 삭제됐다.
아직 연체를 상환하지 못한 112만6000여 명도 오는 12월까지 전액 상환하면 별도의 신청 없이 연체 이력이 삭제될 예정이다.
이는 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서민과 소상공인의 신용 회복을 지원하고 경제 활동 복귀를 돕기 위한 조치다.
연체 이력이 삭제되면서 대상자들은 신용점수가 오르고, 신규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 등 금융 거래에서 혜택을 볼 예정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은행권의 한숨은 깊어지는 모습이다. 대규모 연체 이력 삭제가 대출 심사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어서다.
은행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을 내어주기 전 대출 신청자의 상환 능력을 파악한다. 특히 과거 연체 기록은 대출 심사의 핵심적인 판단 근거가 된다.
이번 사면에 해당하는 대상자들의 연체 정보가 사라지자 은행권의 '깜깜이 심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정부는 서울 집값 상승세를 완화하기 위해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이번주 중으로 추가 규제도 발표할 방침이다.
대출 총량이 줄어들다보니 은행으로서는 '옥석 가리기'를 통해 위험 부담이 낮은 우량 차주에게 대출을 내주며 건전성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대안으로 통신 요금 납부 이력, 쇼핑 정보 등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모델을 도입하거나 고도화할 방침이다.
그러나 금융 거래 정보만큼 상환 능력을 명확히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재기를 지원해야 할 서민이나 소상공인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연체 이력 삭제가 곧바로 신용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과거 연체 기록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게 되면, 자칫 잠재적 부실 위험이 있는 차주에게 대출이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액 상환을 완료한 성실 차주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 우려는 제한적"이라면서도 "과거 신용사면 이후 재차 연체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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