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영화 '트론'은 컴퓨터 그래픽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장편으로 기록된다. 현재는 실험적 시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논란을 함께 불러왔다.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은 "컴퓨터로 만든 영상은 예술이 아니다"라며 시각특수효과 부문 후보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할리우드는 CG와 VFX가 없는 영화를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기술은 더 이상 보조가 아니라, 서사와 감정, 심미의 일부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현재 그 때와 비슷한 질문이 더 복잡한 형태로 되돌아왔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브래디 코벳의 '브루탈리스트'가 주인공들의 헝가리어 대사를 AI(인공지능)로 교정했다는 이유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일대기를 다루는 작품이기에, 인공적 보정이 진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과, AI가 개입하는 순간 감정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지적했다.
이후 아카데미 측은 불과 1년 만에 "AI를 사용한 영화라도 후보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과거 '트론' 사태 때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와 수용 태도를 보였다.
이는 AI 기술이 '듄: 파트2' 등 대작에서도 음향 및 시각효과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기술 수용의 흐름이 곧 논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AI의 침투는 예술의 가장 본질적인 영역, 즉 인간 배우의 역할이라는 민감한 지점으로 향하며 더 큰 충돌을 예고했다.
논쟁의 정점에 선 건 AI 스튜디오 시코이아가 가 공개한 AI 배우 틸리 노우드다.
영국식 억양을 사용하는 노우드는 지난 5월부터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만들고 가상의 일상을 공유하며 대중과 소통해왔으며, 곧 공식 매니지먼트와 계약해 활동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즉각 강도 높은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노조는 "노우드가 수많은 전문 연기자들의 작업을 바탕으로 훈련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생성한 캐릭터"일 뿐이라며, "허락 없이 만들어진 이 캐릭터는 삶의 경험이나 감정을 끌어낼 수 없고 결국 배우들의 생계를 위협하며 인간의 예술성을 훼손하는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SAG-AFTRA 파업 당시 AI 활용에 대한 명확한 규칙 제정을 요구했던 배우들의 불안감이 현실화된 것이다.
반면 틸리 노우드의 제작자 측은 AI 배우가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적인 예술 작품이며, 아예 별도의 장르로 평가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AI 캐릭터 창조 역시 상상력과 장인 정신이 필요한 작업으로, 전통적인 창작 활동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다.
현재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방송 업계는 각종 콘텐츠 제작에 AI 기술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으나, 그 허용 범위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AI 기술이 활성화될수록 제작비가 감축되고 더 많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어 창작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있다. AI를 애니메이션, CG처럼 창작 도구의 확장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SAG-AFTRA를 중심으로 한 배우 및 창작자들은 AI 배우의 등장이 생계 위협과 인간 예술성의 훼손을 가져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982년 '트론'을 비판했던 목소리가 '기술의 발전이 예술의 진보였다'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았듯, 21세기 할리우드의 이 격렬한 논쟁은 미래 영화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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