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상고심서 "뇌물=재산 기여 증거 안돼"
노소영, 1심 불복하며 2심서 그동안 숨겨왔던 비자금 증거 제출 논란
"국가가 몰수할 돈" 여론 확산…독립몰수제 도입 논의 속도 붙을 듯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 자금 300억원의 성격을 '뇌물'이라고 판단하면서, '과거사 청산 2막'이 열릴 전망이다. 당장 정치권 등에서는 형사적 방법을 통해 국가가 몰수 추징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제도적 보완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17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 최 회장의 상고를 받아들여 SK측에 흘러 들어갔다는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은 뇌물로 보인다며 불법 조성한 자금을 분할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민법상 불법원인급여로, 반사회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으며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재산분할에서 고려하면 안 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노 관장은 추징 우려 때문에 300억원의 비자금을 30년 가까이 숨겨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해당 비자금의 실체는 노 관장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해 열린 2심에서 노 관장의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각각 작성한 '선경 300' 메모와 약속어음 6장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항소심은 이 돈이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게 건네져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며 최 회장의 SK 지분 등을 공동기여 재산으로 보고 천문학적인 재산분할금을 책정했었다. 2심은 결국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 1조3808억원, 위자료 6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 결국 노 관장은 불법 비자금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혼 소송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뒤늦게 이를 공개함으로써 도의적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대법원은 "뇌물의 일부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하여 함구해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해당 자금이 불법이라는 민사 판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곧바로 국고 환수나 형사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게 재계와 법조계의 중론이다. 노 전 대통령과 최 선대회장이 모두 사망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시행 전에 전달된 금액이라는 점에서 국고 환수가 불가능하다. 또 이 자금이 SK그룹의 현재 지배구조나 자산으로 구체화됐는지도 불투명하다. 최 회장 측은 300억원의 전달 시기나 방식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노 관장의 책임론과 제도 개혁 논의에 불을 붙일 전망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실제로 국회와 학계, 시민사회는 최근 범죄수익 환수의 법적 한계를 보완할 방안으로 이른바 '독립몰수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 폭력 범죄자의 경우 숨졌거나 해외로 도피하더라도 범죄수익 비자금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독립몰수제법)을 대표 발의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도 불법 비자금 환수를 위해 '형사상 독립몰수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서 "노소영 씨가 가져갈 돈이 아니라 국가가 몰수 추징할 돈"이라며 "도박 자금, 마약 자금처럼 불법 자금을 빌려줬다면 (상대가) 돌려주지 않는 한 반환받을 수 없어 상대방에게 귀속되는 건 맞지만 형사적 방법을 통해 국가가 몰수 추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도 전날 SNS에 "이제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 조속히 심의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 "우리가 이 소송에서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SK 경영 문제니, 세기의 이혼이니, 이런 게 아니라 노태우 일가의 부정축재 재산 300억원"이라며 "이 돈은 국민의 땀과 눈물 위에 쌓인 '권력형 재산'이다. 국고로 반드시 환수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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