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고신용자가 이자 0.1% 더 부담해 저신용자 싸게 빌려주자”
정부, 은행권에 취약계층 지원 압박
고신용자 우대 줄고, 저신용자 우대 더 받아
“시장 원리 거스르는 ‘역금리’ 현상 이어지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2026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기자
최근 은행권에서 보기 드문 ‘역(逆)금리’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신용도가 높은 고객의 대출금리가 오르고, 오히려 최저신용자의 금리가 낮아진 것이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와 정부의 취약차주 지원 압박이 맞물리면서 시장의 금리 구조가 뒤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지난 10월 신규 취급한 가계대출의 가산금리는 최저신용자(600점 이하)에게 적용된 평균 가산금리가 5.58%로 한 달 전보다 0.24%포인트(p) 하락했다.
반면 최고신용자(951~1000점)의 가산금리는 3.012%에서 2.984%로 소폭(0.028%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이례적인 것은 ‘우대금리’ 흐름이다. 같은 기간 최저신용자의 가감조정금리는 0.92%에서 1.232%로 오르고, 최고신용자는 1.65%에서 1.616%로 떨어졌다. 고신용자는 우대가 줄고, 저신용자는 우대를 더 받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를 두고 “정책이 시장 원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금리는 기본적으로 위험이 높을수록 금리도 높아지는 것이 원칙인데, 정부가 취약계층 지원을 압박하면서 오히려 ‘위험할수록 싸게 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더 강해지면서 일반 신용대출 취급이 어려워졌고, 대신 가산금리가 낮은 정책성 대출 비중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현상이 은행들이 의도적으로 저신용자 금리를 내리거나 고신용자 금리를 올린 결과는 아니다”면서도 “최근 정부가 상생금융과 취약차주 지원을 강조하면서 정책성 대출의 비중이 확대된 영향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원리상 신용위험이 높으면 금리도 높아지는 게 일반적인데, 정책금융 확대가 금리 구조에 일부 반영되면서 일시적으로 이런 흐름이 나타난 것 같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커질 수 있지만, 정부의 포용금융 기조에 맞춰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초우량·고신용 차주가 이자 0.1%포인트만 더 부담하면 금융 접근이 어려운 이들에게 더 낮은 금리로 빌려줄 수 있지 않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금융권 내부에서는 ‘정책 신호’가 시장 금리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들이 ‘새희망홀씨’나 ‘채무조정대출’ 같은 정책성 상품의 금리를 자체 인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시장 왜곡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해 묻자, “도덕적 해이 같은 문제가 워낙 많다”며 “인위적 금리 조정에는 여러 부작용이 따른다”고 사실상 경고의 메시지를 내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 의도가 선하더라도 신용 리스크에 따른 금리 차등이 무너질 경우 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흔들리고, 결국 전체 금융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며 “은행의 금리를 정책 수단처럼 쓰는 건 장기적으로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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