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에 지친 시청자, 잔잔한 감정 서사로 회귀
진부하게 느껴졌던 '사랑 타령'이 역으로 신선하게 여겨지고 있다. 스릴러와 사회고발로 흥미를 유발하던 방송가가 다시 감정과 관계에 집중하며 위로를 선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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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얄미운 사랑’과 SBS ‘우주메리미’가 방영 초반 논란을 딛고 호평을 받으며 로맨스와 케미 중심 서사의 힘을 입증 중이다.
‘18세 나이 차’로 출발 전부터 논란이었던 ‘얄미운 사랑’은 첫 방송 시청률 닐슨코리아 기준 5.5%로, 올해 방영된 tvN 월화 드라마 중 역대 2위를 기록했다.
배우 이정재는 정의로운 형사 이미지에 갇힌 ‘낡은 톱스타’ 임현준 역을 맡아 자기풍자적 연기로 웃음을 이끌었고 임지연은 정치부 기자에서 연예부로 밀려난 위정신 역으로 생활감 있는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나이 차 논란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재밌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SBS 금토드라마 ‘우주메리미’ 역시 불법촬영·스토킹·데이트폭력 등 시대착오적 장면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최우식과 정소민의 케미와 로맨스 합으로 3주 연속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현실에서는 꼬여버린 인생이지만 가짜 신혼으로 진짜 사랑을 찾는다는 설정 속 두 배우의 호흡이 반응을 이끌었다.
코로나로 불안과 답답함이 극에 달했던 2021년에는 정의와 복수를 내세운 강렬한 장르물이 안방극장의 대세 장르였다.
SBS ‘모범택시’는 불완전한 정의의 모순을 파고들며 최고 시청률 15%를 넘겼고, tvN ‘악마판사’는 ‘사이다 정의’를 법정극으로 구현하며 주목받았다. 같은 해 넷플릭스 ‘마이 네임’은 한소희의 복수극으로 로튼토마토 관객 점수 94%를 받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MBC ‘빅마우스’, SBS ‘악귀’ 등 자극적인 서사가 드라마 시장의 주류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 피로감도 함께 쌓였다. 폭력과 복수, 음모와 고발이 넘치는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은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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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언급한 두 로맨스 드라마를 비롯해 위로와 공감, 인간적인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도 이어진다.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동경하고 질투하며 평생 얽혀온 두 여자의 관계를 담담하게 그리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진입에 성공했었고 tvN ‘미지의 서울’은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보며 이해와 연민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통해 최고 시청률 8.4%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사건보다 감정, 메시지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춰 시청자와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냈다.
반면 장르물은 좀처럼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8월 방영된 MBC ‘메리 킬즈 피플’은 “삶과 죽음, 옳고 그름의 경계”를 탐구한 메디컬 스릴러였지만 무거운 주제 의식과 어두운 톤으로 시청률 1%대에 머물렀다.
같은 달 ENA에서 방송된 '아이쇼핑' 또한 양부모에게 버려진 후,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아이들의 처절한 생존과 복수를 그린 액션 스릴러로 수위 높은 전개를 선보였지만 시청률은 2%대였다.
최근 KBS2에서 방송한 ‘은수 좋은 날’은 이영애를 주연으로 세워 마약과 사회의 부패, 계급 문제 등을 다뤄 주목을 받았으나 3~4%의 시청률에 그쳤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도파민형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며 “극 중 인물 간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부재한 자극적인 서사들은 결국 시청자에게 불행감과 우울감을 남긴다. 콘텐츠는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아야 하고 캐릭터나 이야기 자체에 친근감을 느껴야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불황기에는 멜로, 코미디가 대세가 되기도 한다. 김 평론가는 “경제 상황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시청자들은 복잡한 사회 메시지보다 소소한 행복과 감정적 안정감을 주는 작품을 찾는다”며 “결국 로맨스와 인물 중심 서사가 위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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