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이야기하는 영화 '넌센스', 지나친 공백이 만든 아쉬움 [볼 만해?]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1.24 14:01  수정 2025.11.24 14:01

영화 '넌센스'는 초반의 촘촘한 심리 설계로 몰입을 이끌지만 이후 비워진 서사와 설명이 부족한 인물 관계로 인해 혼란 만을 남긴다. 의도한 공백과 허술한 연결은 설득력을 가지기보다는 의문이 오래 남는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넌센스'는 손해사정사 유나(오아연 분)와 수상한 웃음치료사 순규(박용우 분)의 조우를 통해 심리의 균열을 따라가는 스릴러다. 이제희 감독의 연출 데뷔작으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살아가는 유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유나의 성격과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이 인물에 대한 방향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유나는 보험 수령을 막는 냉철한 손해사정사로, 이번에도 피해자의 보험금을 받을 사람을 조사하던 중 순규를 만나게 된다. 순규는 웃음치료사로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스며들고, 유나 역시 그 틈에서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초반부의 설정은 꽤 탄탄하다. 유나의 직업적 디테일, 순규와의 대면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차곡차곡 쌓여 "저 사람을 믿어도 될까?"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문제는 후반부다. 영화 '추락의 해부'처럼 순규가 진짜 악인일지,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였을지 등 진실을 관객의 상상에 맡기려는 선택 자체는 흥미롭지만 '넌센스'는 그 여백을 지나치게 넓게 비워둔다. 상상력을 발휘해도 닿지 않는 지점까지 설명을 덜어낸 탓에 관객은 감독이 일부러 숨겨둔 것인지 그냥 놓친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초반부 순규의 파티용품숍에 칼을 들고 등장하는 파란 옷을 입은 여성 캐릭터다. 순규와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어떤 서사를 공유했는지, 나중에는 왜 순규와 부부 관계를 맺었고 죽음에 어떻게 이르렀는지에 대한 단서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정보가 적으니 그 비극이 주는 놀란 감정도 약해진다.


맨 처음 익사체로 나온 피해자와 야구부 학생, 마지막 유나의 웃음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인연이 시작됐는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스토리의 뼈대가 흐릿해 공포나 안타까움보다는 "도대체 왜?"라는 의문만 남는다. 순규가 이용하는 사람들의 '믿음'은 원래 100%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맹목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관객이 따라갈 수 있는 최소한의 감정과 사건의 흐름까지 포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인상적인 순간들이 없진 않다. 상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연출은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다. 유나가 있는 공간은 빛으로, 순규가 서 있는 곳은 어둡게 연출하거나 두 인물을 보색이 되는 색으로 두고 점점 색깔이 섞이는 연출은 유나가 순규에게 마음을 여는 일련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 복잡한 세계관 속에서 빛난다. 첫 장편 주연을 맡은 오아연은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초반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후반부까지 유나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쌓아 올린다. 마른 톤과 텅 빈 눈빛으로 시작해 어느 순간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려가는 얼굴까지 그 변화하는 모습이 설득력 있다.


박용우는 특유의 노련함으로 순규라는 인물에 살을 붙인다. 다정함과 섬뜩함이 한 얼굴 안에서 교차하는 연기, 웃음 치료사와 가스라이팅 당한 가해자 사이를 오가는 태도는 캐릭터에 이상한 매력을 부여한다. 국밥집에서 유나와 대화하는 장면 중 "왜 사람은 낯선 이에게 위안을 얻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상처를 받을까"라는 대사는 그가 직접 수정한 것인데, 영화 속 순규의 정체성을 잘 나타낸다.


초반부의 긴장감과 촘촘한 진행만 끝까지 유지됐다면 믿음의 모순을 파고드는 수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반부의 과도한 여백과 허술한 연결이 결국 작품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믿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한 번쯤 부딪혀볼 만한 '넌센스'가 될 것이다. 러닝타임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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