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재래 흑돼지에서 시작된 변화…우리 농업의 ‘새 얼굴’
난지축산연구센터, 품종개량과 유전자 연구 결실
승용마에서 흑돼지까지…우리나라 품종의 브랜드 시대
난지축산연구센터는 우리나라 토종 자원 발굴과 개발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센터에서 사육 중인 승용마들이 한라산 아래에서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미래 농업의 희망이 싹 트는 현장. 농촌진흥청 연구소의 혁신적인 발자취를 따라간다. 농촌진흥청 연구소 곳곳에 숨겨진 혁신의 씨앗들을 찾아, 대한민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 ‘혁신의 씨앗’을 시작한다. 신농사직썰 시즌4인 혁신의 씨앗은 기초 연구부터 실용화 단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농업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데일리안에서는 ‘혁신의 씨앗’ 시리즈를 통해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센터는 제주재래흑돼지의 우수한 육질을 살리면서도 성장성과 생산성이 뛰어난 국산 흑돼지 품종 ‘난축맛돈’을 개발해 대한민국 양돈산업의 판을 바꿨다.
난축맛돈의 시작은 제주 흑돼지의 느린 성장과 적은 산자수라는 한계, 그리고 국내 양돈농가의 외국산 종돈 의존도라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5년부터 8년간 연구진은 제주재래흑돼지와 랜드레이스 품종을 교배하며 1273두에 달하는 참조축군의 표현형·유전형 데이터를 누적했다.
센터는 국내 최초로 유전체 선발기술을 적용해 흑모색과 뛰어난 육질 형질을 결정하는 핵심유전자를 발견, 품종에 고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일반 백돼지 등심의 근내지방 함량 2.5% 대비 난축맛돈은 10% 이상으로 4배 높아 ‘마블링’과 부드러운 식감, 붉은 빛깔이 특징인 프리미엄 돼지고기가 탄생했다.
김난연 센터장이 센터 성과와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난축맛돈은 삼겹살뿐만 아니라 등심·목살·뒷다리 등 지방이 적어 소비가 상대적으로 낮던 부분도 구이용으로 활용하면서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다. 생산성과 성장 속도, 경제형질까지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제주·경남 등지 농가에 확산되고 있다.
김남영 난지축산연구센터장은 “난축맛돈은 2014년까지 최초로 특허·상표 등록에 성공한 뒤, 난축맛돈연구회·전용 사육장 확대 및 40여 개 식당을 중심으로 전국 유통망을 형성했다”며 “2024년 기준 약 983마리의 씨돼지를 보급하며 국산 흑돼지 산업의 표준모델이 됐다. 또 FAO 국제식량농업기구 품종 등재로 세계적 흑돼지 브랜드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번식형·산육형 계통 조성과 유전자 기반 정밀 선발 시스템 구축 등 품질·생산성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김 센터장은 “국내를 넘어 일본, 미국 등 해외 특허 등록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라며 “연구진, 농가, 소비자가 함께 성장하는 지속 가능한 흑돼지 산업 생태계 조성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평범한 새벽, 한 연구자의 궁금증으로 탄생한 ‘난축맛돈’
새벽 도축장에서 마주한 제주재래흑돼지의 육질은 평범한 연구자의 일상에 질문을 던졌다. 기름지고 물빠짐 심한 일반 돼지와 달리, 제주 흑돼지는 단단한 육질과 풍부한 육즙이 살아 있었다. 그 우수함을 몸소 확인한 난지축산연구센터의 한 연구자는 “이 고기라면 평생 연구해도 좋겠다”는 결심을 품게 된다.
실험실 수치보다 현장에서 손으로 만진 고기의 실감이 우선이었다. 연구진은 제주재래흑돼지와 랜드레이스를 교배해 1105마리의 F2 새끼를 생산했다.
100여 개 형질 데이터를 누적하며 KIT, MYH3 등 흑모색·육질 결정 유전자 변이의 존재를 밝혀낸다. 국내 최초로 유전자마커 기반 선발 기술이 적용돼 ‘난축맛돈’이라는 이름의 신품종이 완성됐다.
개발 과정에선 현장 막내의 새벽 출근, 피비린내 가득한 도축장, 전국 분석기관 순례 등 연구자의 현실이 녹아 있다. 긴 연구 비용과 데이터 축적의 부담, 그리고 지방산 분석의 고된 시간. “이건 반드시 될 연구”란 동료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20년 넘게 끊김 없이 이어진 과제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난지축산연구센터의 가장 큰 성과는 제주 재래 흑돼지의 브랜드화에 성공한 '난축맛돈'이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난축맛돈의 경제적 임팩트는 명확하다. 국산 종돈의 자립, 수입 종돈 대체 효과, FAO 국제 품종 등재로 국가 생명자원 주권, 7851억원의 기술가치 평가에 이어, 농가 소득 안정화까지 이룩했다.
2024년 기준 난축맛돈은 일반 흑돼지보다 15~20% 높은 단가에 거래된다. 난축맛돈연구회 중심의 고정단가 계약 거래로 연평균 소득이 꾸준히 올랐다.
유통 단계 역시 혁신적이다. 전국 14개의 전용 사육농가와 40개 소비 식당을 중심으로 생산, 유통,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순환 구조가 구축됐다.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인 단가, 소비자에게는 균일한 품질이 보장된다. 비선호 부위까지 고급 구이용으로 활용, ‘돈마호크’ 등 브랜드 제품이 시장을 확장한다. 국산 흑돼지 점유율 상승과 이베리코 돼지 수입 대체 효과까지 확인된다.
난축맛돈의 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번식능력이 뛰어난 모계·산육성이 우수한 부계 계통으로 축군을 구축하고, 유전자 기반 정밀 선발 시스템을 구축해 품질의 예측력을 높인다.
제주뿐 아니라 내륙으로 사육농가를 확대하고, 생산가공유통까지 이어지는 통합 품질관리(QMS) 체계로 고급 식문화를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스페인 이베리코처럼 가공육, 숙성육 제품 개발로 시장 다변화를 이끌고, 가공·외식·관광 산업 연계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은 난축맛돈의 외연 확장이다. FAO 등재 국제 공인 품종 ‘Nanchukmacdon’으로 위생관리·검역체계를 수출 기준에 맞춰 정비하며 일본, 스페인 등 세계 주요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을 준비 중이다.
김 센터장은 “난축맛돈의 진짜 의미는 ‘국산 품종의 보존’을 넘어, 연구자·농가·소비자가 함께 성장하는 지속 가능한 흑돼지 산업 생태계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농가와 사람, 함께 웃는 말산업
국내 말산업의 중심축이 경마에서 승마로 빠르게 옮겨가는 흐름이다. 국민 소득 증가와 여가 활동 변화, 그리고 유소년과 레저를 위한 승마 인구의 꾸준한 확대가 이런 흐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제 말산업은 경주마 대신 모두가 함께 즐기는 승용마 중심 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제3차 말산업육성 종합계획(2021~2026년)의 한가운데, 국산 승용마의 육성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승마 산업 규모를 5000억원, 승마 일자리를 9000명까지 확장한다는 국가 전략 아래 어린이와 성인, 장애인 재활 승마까지 다양한 수요층이 형성되고 있다.
센터는 체형·모색·품성 등 세 가지에 집중해 RDA(농촌진흥청 약자)승용마를 만들어냈다. 한국인 체형에 맞게 성장 특성 분석과 개량이 이뤄졌다.
12개월령 기준 체고는 124.5cm에서 128.3cm까지 꾸준히 커졌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흑색 모색 유전자(MC1R) 빈도 역시 21.8%에서 90%까지 고정 중이다. 단일 표현형은 2016년 고정에 성공했다.
최근 승용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센터에서도 체형·모색·품성 등 세 가지에 집중해 RDA 승용마를 탄생시켰다. 사진은 RDA 승용마가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이뿐만 아니라 품성 평가 항목을 5개에서 8개로 늘려 온순하고 대인친화적인 개체를 선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했다. 품평회와 승마대회에서 RDA승용마가 2·3등급을 획득하고 유소년 승마대회 장애물 3위를 한 사례는 국산 승용마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공공 및 일반 승마장에서 현장 평가에서도 RDA승용마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온순성, 대인친화성, 시승 만족도 모두가 4점대 이상을 기록했다. ‘비공격성’도 안정적으로 평가됐다. 현장 승마장들은 국산 승용마의 품질과 새로운 가능성에 만족을 나타내고 있다.
기술 개발, 현장 검증, 그리고 생활·재활·힐링 등 모든 승마 영역에서 RDA승용마 보급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 말이 공공과 민간 승마장에 자리잡으면서 여가활동의 다양화는 물론 사회공헌 기능까지 확장됐다.
센터는 생활 승마와 재활 승마의 저변 확대가 곧 국내 말산업 전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지난달 9월에는 센터가 개발한 RDA승용마’가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기마대에 도입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12월에 첫 도입이 이뤄진다. 강건한 체질과 온순한 성격을 가진 RDA승용마를 제주 주요 관광지 기마 순찰 등 공공 안전 업무에 투입한다는 것이 골자다.
김 센터장은 “이번 협약은 RDA승용마의 실용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공공부문을 넘어 생활승마 분야까지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와 보급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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