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피로도 속에서도 가전만 성장
데이터·장기 수익 모델이 새 경쟁력
가전 구독은 전문 매니저의 정기적인 케어와 소모품 교체, 무상 A/S 등을 받을 수 있고 초기 구매 부담이 적어 국내외에서 인기다.ⓒLG전자
LG전자의 가전 구독 서비스가 올해 2조 원 매출 달성이 유력해지면서, 가전 산업의 무게 중심이 ‘판매’에서 ‘지속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조8900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에 근접했으며, 연말 수요를 고려하면 2조 원 돌파가 무난하다는 전망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 가전 구독 매출은 3분기에만 약 7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1분기 5600억 원, 2분기 6300억 원에 이어 꾸준한 상승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연말 특수가 본격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연간 매출이 지난해 1조9200억 원을 상회하는 것은 확실하다는 평가다.
LG전자의 가전 구독 사업은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S사업본부와 TV 등 홈엔터테인먼트 라인을 보유한 MS사업본부가 중심이다. 회사는 2009년 정수기 렌털 사업을 시작으로 구독 모델을 대형 가전까지 확장해왔다. 현재 구독이 가능한 품목은 세탁기·에어컨·냉장고 등 백색가전은 물론 TV·모니터·노트북 등 300여 종에 달한다.
최근 가전 산업이 전반적으로 둔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LG 구독 매출은 오히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콘텐츠·식음료·모빌리티 등 기타 산업군에서 ‘구독 피로감’이 지적되는 것과 대비된다. 필수재인 가전은 초기 비용 부담을 낮추고 관리·AS·업그레이드 서비스를 묶어 제공하는 구독 모델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매력적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초기 비용 부담이 사라지고 관리·AS·업그레이드까지 내재화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유의 번거로움’을 덜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선 판매보다 예측 가능한 장기 수익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금융 모델의 성격과 일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최근 수년간 가전 구독 매출을 연평균 30% 가까이 성장시킨 것도 이러한 배경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데이터 기반 경쟁력이 결합되면서 구독 모델은 제조사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구독 가입자는 대부분 LG 씽큐와 같은 플랫폼과 연결되며,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사용 데이터는 AI 기반 제품 개발의 원천 데이터로 활용된다.
소비자 사용 패턴, 고장 시점, 전력 효율 변화 등 데이터는 제품 개선의 핵심 인풋이다. 중국산 제품의 상향 평준화로 기술 격차가 좁혀진 상황에서, 이러한 데이터 기반 개발 역량은 고부가 제품 경쟁력 확보에도 주요 밑거름이 된다.
최근 ESG 경영 강화 기조도 구독 사업과 방향이 맞물린다. 소비자는 최신 고효율 가전을 빠르게 경험할 수 있고, 기업은 에너지 효율이 낮은 노후 제품을 고효율 모델로 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구독 모델이 가전판 ‘순환 경제’ 역할을 수행한다고 평가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가전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구독이 새로운 ‘애프터마켓’을 열어준다는 사실이다. 신제품 판매가 둔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설치·관리·부품·업그레이드 서비스는 오히려 중요해졌다. 구독은 해당 시장 전반을 제조사가 직접 붙잡을 수 있는 구조여서, 성장 여력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분야로 꼽힌다.
백색 가전의 국내 투톱 제조사 중, LG전자가 시장을 선도하자 삼성전자도 뒤늦게 뛰어들어 올해 1분기만 2000억 원 이상의 구독 매출을 기록했다. 업계는 올해 삼성 구독 사업 매출이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는 구독 가입자 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탄탄한 AI 데이터와 생애주기 기반 서비스를 확보하느냐가 승부처가 될 것”이라며 “구독 모델은 단순 매출 증가를 넘어 가전 불황 속에서 제조사가 어떤 방식으로 비즈니스 구조를 재편하는지 보여주는 변화의 신호”라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