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과 탄압 속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멈추지 않는 카메라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05 14:01  수정 2025.12.05 14:01

이란 법원이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선전 활동’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출국금지 2년, 모든 정치·사회단체 가입 금지를 선고한 시점.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순간 그는 뉴욕 고담어워즈에서 감독상·국제장편영화상·각본상 3관왕을 차지하며 오스카 레이스의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한 사회에서는 그의 영화가 감시의 대상이 되고, 다른 사회에서는 예술의 언어로 환대받는 극명한 대비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파나히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소리 없이, 어떤 지원도 없이, 때로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걸고 오직 진실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만으로 카메라를 놓지 않는 영화인들에 대한 작은 경의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억압 속의 창작자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건넸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검열 사회에서 창작을 지속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존재의 방식이자 저항의 형식이 되는지를 증명해 온 이장의 거란이다.


파나히는 오랫동안 여성·청년·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해온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해 왔고, 그 결과 체포·구금·가택연금·영화 제작 금지·언론 인터뷰 금지 등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다. 2010년에는 반정부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20년 해외여행 금지와 영화 제작 금지를 선고받았다. 당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됐음에도 구금된 채 불참해야 했다. 영화제는 개막식 심사위원석의 그의 자리를 빈 의자로 남겨두며 이란의 검열을 향한 국제적 문제 제기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가택 연금 상태였던 그는 영상 일기 형식의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를 USB에 담아 케이크 속에 숨겨 칸영화제로 보내는 방식으로 검열을 우회했고, 이후에도 ‘닫힌 커튼’, ‘택시’, ‘3개의 얼굴들’을 제작하며 은곰상·황금곰상·각본상 등을 거머쥐었다. ‘


‘노 베어스’를 촬영하던 중 2010년의 미집행 형을 이유로 또다시 체포되었으며, 구금된 상태에서 베네치아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을 전해 듣는 상황을 다시 한 번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억압은 그의 활동을 멈추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파나히의 영화는 이란 사회의 정치적 현실을 가장 정밀하게 기록하는 증언이 됐다.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은 고문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잔혹하게 다루었던 전직 교도관이라 믿는 남자와 마주하며 복수할 것인지, 혹은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그린다.


파나히는 이 서사를 통해 국가 폭력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와 피해자에게조차 윤리적 결단을 강요하는 잔혹한 구조를 드러내며, 복수가 해방이 될 수 없는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영화 속 공간은 이란 사회와 검열 체제를 그대로 축소한 세계로 겹쳐지며 이란을 향한 일침을 날린다.


이 작품이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서 파나히 감독은 ‘써클’의 베니스 황금사자, ‘택시’의 베를린 황금곰, ‘그저 사고였을 뿐’의 칸 황금종려로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최초의 이란 감독이 됐다.


이 성취는 단순한 영화적 영광이 아니라, 검열 사회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가에 대한 국제적 판단이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세계적 연대의 신호이기도 하다. 억압은 한 예술가의 신체를 구금할 수는 있으나, 그가 바라본 현실과 기록하려는 의지를 구금할 수는 없었다. 결국 파나히의 생애와 필모그래피는 권력이 표현을 억압할 때,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고 무엇을 증언하고, 어떻게 저항의 언어가 되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제 자파르 감독의 발걸음은 오스카로 향한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이란 정부가 아카데미 출품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배급사인 프랑스 작품으로 경합에 나서게 됐다. 억압 속에서 길을 찾으며 창작 활동을 지속해온 자파르 감독의 태도는 예술이 왜 쉽게 침묵하지 않는지,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왜 여전히 지켜져야 하는 가치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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