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뱅크 사고 터지니 동의 없는 금융조회 ‘힘’…일반 국민 정보까지?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5.12.19 08:20  수정 2025.12.19 08:21

일괄 소각 설계의 허점, 또 다른 예외적 법 개정으로 메우나

성실 상환자 반감 속 정책 보완 명분 커진 신용정보법 개정

한정된 예외라지만…적용 범위 확대 우려는 여전

정부가 추진 중인 배드뱅크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채무조정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실패가 또 다른 예외적 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정부가 추진 중인 배드뱅크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채무조정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실패가 또 다른 예외적 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드뱅크는 성실히 빚을 갚아온 금융소비자들의 반감을 감수하더라도 취약 차주를 구제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개인파산이나 워크아웃 제도를 신청할 여력조차 없는 이른바 ‘사각지대 차주’를 보호하기 위해, 차주 신청 없이 장기 연체 채권을 일괄 매입·소각하는 ‘새도약기금’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설명이다.


그러나 시행 과정에서 제기됐던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의 배드뱅크 사업인 ‘새출발기금’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와 금융당국 설명을 통해 고소득·재산 은닉자까지 채무 탕감 대상에 포함된 사례가 확인됐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걸러졌어야 할 부적격 차주들이 실제로 구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배드뱅크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성실 상환자들 사이에서는 “왜 빚을 갚아온 사람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하느냐”는 반감도 확산됐다. 채무조정 정책이 반복될수록 성실 상환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정책 보완책으로 차주 동의 없이도 소득과 자산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꺼내 들었다.


재산 은닉자를 걸러내지 못한 배드뱅크의 집행상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차주 동의 없는 금융정보 열람’이라는 예외를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그동안 개인정보 침해 우려로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던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오히려 힘을 얻는 분위기다.


배드뱅크의 허점이 드러나자 “이 정도 조치 없이는 정책을 운영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개인정보 침해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다만 문제는 논란을 낳은 정책을 또 다른 예외적 법률로 떠받치는 방식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점이다.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고 설계를 재검토하기보다, 이를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정보 접근 권한을 확대하는 방식이 반복될 경우 유사한 논리가 다른 정책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개인정보 일괄 조회 권한이 채무조정 대상자에 한정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법 문구상 ‘필요한 자료 또는 정보’의 범위가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적용 대상이 향후 확대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배드뱅크를 계기로 허용된 예외가 다른 정책금융이나 행정 집행 과정에서도 반복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드사·이커머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며 사회 전반의 개인정보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도, 정부가 정책 강행의 부담을 개인정보 접근 권한 확대로 해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적격자를 걸러내기 위해 소득·자산 확인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 해법이 신용정보법의 근간을 흔드는 예외 조항이어야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행정력을 최소화한 일괄 매입·일괄 소각 구조에서 생긴 허점을 개인정보 열람 확대로 메우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라며 “감면 대상자에게 동의를 받는 구조를 기본으로 두고, 반복 안내 등을 통해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식이 보다 정교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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