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글로벌 1위에도 국내서 혹평…비평과 비난 경계 흐려져 [D:영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2.31 14:01  수정 2025.12.31 14:01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가 글로벌 차트 1위를 기록하며 흥행하는 동안 국내에서는 '볼 만했다'는 반응과 '기대 이하'라는 혹평이 동시에 나오며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문제는 논쟁이 심화될수록 비평을 넘어 보지 말라는 강요와 제작진을 향한 비난으로 번지며 콘텐츠를 평가하는 수위의 선이 흐려지고 있다.


ⓒ넷플릭스

'대홍수'는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건 이들이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 속에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29일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대홍수'는 전날 기준 한국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9일째 유지했다. 넷플릭스 공식 집계에서도 추이가 좋다. 투둠(Tudum)의 '글로벌 TOP10'(12월 15~21일, 2025년 51주차) 비영어 영화 부문에서 '대홍수'가 2790만 뷰로 1위를 차지했다.


생존·탈출 서스펜스 자체의 긴장감, 주연 배우인 김다미·박해수의 열연, 재난과 SF를 결합한 시도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에서 반응이 갈리는 이유는 예고편과 보도 자료 등이 만든 기대치와 실제 작품의 내용 사이 간극 때문이다. 초반부 재난 상황과 반복되는 사건들이 AI 딥러닝 과정이라는 설정이 등장하는 순간, 그동안의 생존극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이 커지고 결국 영화가 모성애로 수렴하는 방식이 진부하다는 지적이다. AI가 인간다움을 얻기 위해 모성애를 학습해야 한다는 전제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지점에서 가족애와 SF를 결합한 대표적인 작품을 떠올릴 수 있는데 바로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의 경우 부성애를 통해 개척자·도전자의 영웅상을 구축했다면 '대홍수'는 모성애를 인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사랑의 형태로 놓는다. 오히려 서구권에서는 이런 모성 서사를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국내 SF 관객층의 높은 기대와 할리우드 기준으로 장르의 완성도를 재단하려는 경향이 호불호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명 평론가의 낮은 평점이 온라인에서 공유되며 논쟁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지난 28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대홍수'에 평점 5점 만점에 2.5점을 주고 '착점이 솔깃하지만 장르의 전환을 설득해내지 못한다'는 한줄평을 남겼는데 '2.5점도 후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호불호 자체는 자연스러운 평가다. 다만 최근엔 불호를 말하는 방식이 과격해지며 논란을 인위적으로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번역가 황석희가 '대홍수' 악평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관객들 평이 점점 짜다. 그리고 평의 염도에 비례해 표현이 과격해진다"며 "'죽어도 보지 마라', '이딴 영화사는 망해야 한다'와 같은 평이 많은데 싫으면 싫은 거지 이럴 필요가 있냐"고 현재의 과열된 분위기를 짚는 글을 올렸고, "자기 표현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지 남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라는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티빙

이는 '대홍수'만의 현상은 아니다. 김다미가 출연한 JTBC '백번의 추억'은 초반 두 여자주인공의 우정 서사의 매력으로 주목받았지만 중간에 둘이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식으로 전개가 바뀌며 드라마를 쉽게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는 배우의 외형과 이미지 비교로 번지며 특정 캐릭터를 옹호하거나 드라마 자체에 좋다는 의견을 남기면 감상자까지 공격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감독의 전작 이력도 '대홍수'를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병우 감독의 전작 '전지적 독자 시점'은 개봉 전부터 원작 훼손 논란이 거셌다. 특히 이순신을 배후성으로 둔 캐릭터 이지혜의 주 무기가 칼에서 총으로 바뀐 설정, 이지혜 역을 맡은 블랙핑크 지수의 연기력, 원작과 다른 주요 캐릭터들의 이미지 등이 기존 작품 팬들의 반발을 사며 흥행에 참패했다.


이런 과열은 작품의 완성도 논쟁으로만 보긴 어렵다. 김 평론가는 "'대홍수'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문제들이 있고 특히 후반부가 약하기 때문에 비판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면서도 "평점이 낮은 건 어쩔 수 없지만 테러 수준의 반응이 나오는 건 공작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평가의 프레임이 형성되면 그쪽을 따라가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심리가 함께 작동한다"며 "작품에 큰 하자가 없기에 공식적인 자료에서 반응이 좋고 다시 이런 흐름을 따라가며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작품을 둘러싼 공방이 비평을 넘어 비난이 될수록 남는 건 콘텐츠에 대한 건강한 논쟁이 아니라 소모전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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