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맥주 출고량 동반 감소…‘양에서 질’로 이동
도수 인하 경쟁 본격화…저도수 소주 잇단 출시
하이볼만 주세 감면…가격 경쟁력 격차 확대
“도수 만으론 한계”…경험·유통·정책 전환 필요
서울 강남역 사거리 인근 24시간 영업 식당에서 시민들이 술잔을 부딪히고 있다.ⓒ뉴시스
소주업계가 젊은 소비층 유입을 겨냥해 잇따라 도수를 낮추는 전략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 규제와 시장 구조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실질적인 수요 확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무알코올·저도수 주류가 기존 알코올 주류를 대체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가운데, 하이볼을 중심으로 한 혼성주류에 세제 혜택까지 더해지며 가격 경쟁력에서 설 자리를 또 한 번 뺏긴 탓이다. 젊은층의 하이볼 소비 쏠림 현상이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주류 소비는 지속 감소하고 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전년 대비 3.4% 감소한 81만 5712㎘(킬로리터)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맥주 출하량은 163만 7210㎘ 로 전년 대비 3% 줄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감소가 직접적인 영향이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주류 소비문화 변화도 더해졌다.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도 술 소비가 줄어든 원인으로 꼽힌다. 쉽게 말해 ‘양’으로 마시던 술 문화가 ‘질’로 바뀌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주요 소주 업체들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부담 없는 소주’ 이미지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15~16도대 저도수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젊은층과 여성 소비자, 라이트 드링커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소주 소비 문화를 일상형·경험형 음주로 전환하겠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일례로 롯데칠성음료는 제로 슈거 소주 ‘새로’를 리뉴얼하고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0.3도 낮췄다. 앞서 지난해 7월에도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6.5도에서 새로와 같은 16도로 하향조정한 바 있다.
롯데칠성음료 뿐만 아니라 경쟁사 하이트진로 역시 ‘참이슬’과 ‘진로’ 등 대표 제품의 도수를 내리면서 진입 장벽 역시 대폭 낮추는 추세다. 하이트진로는 2024년 ‘참이슬 후레쉬’ 리뉴얼을 단행하고 알코올 도수를 16.5도에서 16도로 낮췄다.
레트로 트렌드를 겨냥해 출시한 하이트진로의 대표 소주 ‘진로 이즈백’ 역시 2019년 출시 당시 알코올 도수는 16.9도였지만, 두 차례에 걸쳐 도수를 낮췄고 현재는 16도로 유지 중이다. 대신 15.5도를 내세운 '진로 골드'를 새롭게 출시하면서 저도주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지역 소주 업체들도 흐름에 동참 중이다. 경남권 기반의 대선주조는 지난해 리뉴얼을 통해 15.9도의 '대선159'를 선보였고, 충청권의 선양소주는 그보다 낮은 14.9도의 ‘선양’을 통해 14도 대 시장에 선진입했다.
이 흐름만 봐도 주류 시장의 구조가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높은 알코올 도수가 주류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했지만, 2000년대 이후 젊은층과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음용 부담이 낮은 제품에 대한 선호가 확산되며 저도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한 식당에서 소비자가 소주를 따르고 있다.ⓒ뉴시스
그러나 이미 20~30대를 중심으로 주류 소비의 무게추는 하이볼과 맥주로 옮겨간 상태다. 달콤한 맛과 향, 캔 중심의 편의성, 취기 조절이 가능한 음용 방식이 일상 소비와 맞물리며 저도수 혼성주류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소주의 도수를 낮춘다고 이 같은 소비 경험 구조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가 술에서 기대하는 경험 자체가 달라진 상황에서, 소주만 기존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정책 변수까지 더해지며 하이볼 쏠림 현상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하이볼과 같은 저도수 혼성주류에 대해 30% 주세 감면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감면 대상은 알코올 도수 8.5도 이하이면서 불휘발분(휘발되지 않는 당분) 2도 이상인 주류다.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하이볼이 대표적인 적용 대상이다. 이번 감면 조치로 소비자 가격은 약 15%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 하이볼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진 셈이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편의점 채널과 대형 하이볼 브랜드를 중심으로 판매 확대 효과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소주는 동일한 저도수 전략을 추진하더라도 세제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기 어려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상대적 불리함이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은 저도수 제품을 통해 소비 저변을 넓히려 하지만, 시장과 정책 환경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구조”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하이볼 시장은 규모 있는 제조사와 편의점 PB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어, 소주 업체들이 체감할 수 있는 반사 효과는 제한적이다.
서울 시내 음식점에 주류 가격이 나타나있다.ⓒ뉴시스
주세법상 술은 ▲발효주(맥주·탁주 등) ▲증류주(소주·위스키 등) ▲기타 혼성주류 등으로 나뉘며, 품목별 과세 기준과 세율이 다르다. 소주는 전통적으로 증류주 과세 체계 아래 세율이 매겨지는 구조다. 그래서 소주는 이번 감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증류주에는 출고가의 약 72% 수준의 주세가 부과되며, 여기에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와 출고가·주세·교육세 합산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가 추가로 붙는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 같은 과세 구조로 인해 소주는 제조사가 가격 인하에 나서더라도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들기 어렵고,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격 인하 폭 역시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저도수 전략은 소주 시장의 급격한 소비 감소 속도를 완화하는 방어적 성격에 가까울 뿐, 젊은층 주력 주종 이동을 되돌리는 결정적 카드가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하이볼 중심의 세제 지원까지 등에 업으면서, 소주 업계의 고민은 한층 깊어졌다.
일각에서는 소주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도수 인하를 넘어, 음용 방식의 다양화와 제품 차별화, 유통 채널 전략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캔·RTD 등 즉시 음용 제품 확대, 향·원료·제조 방식 차별화를 통한 맛 경쟁력 강화, 편의점·온라인 중심 소비 환경 대응이 병행되지 않으면 젊은층 주력 소비 이동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전망으로 풀이된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소비자가 체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경험형 콘텐츠’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팝업스토어, 브랜드 체험 공간 등을 통해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확장하지 못할 경우, 젊은층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붙잡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이 밖에도 단순히 세율을 조정하거나 도수를 낮추는 정책을 넘어, 소비 여력 확대와 유통·외식 시장 활성화를 함께 고려한 거시적 정책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국민 건강을 이유로 담배 등 일부 제품에서는 세금을 높이면서, 하이볼과 같은 특정 제품에는 오히려 세금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만들어주는 방식은 정책 형평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산업에 세제 혜택을 주면서 세수를 줄이는 것이지만, 그 재원 공백을 어디에서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세금 인하 효과가 편의점 등 유통 채널에서는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지만, 유흥 채널에서는 중간 마진으로 흡수될 가능성도 크다”며 “정책 효과가 소비자 체감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동산 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외식·주류 소비가 위축되고 있고, 기업 투자까지 쪼그라들면서 시장 전반이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내수와 실물 경기를 회복시키는 정책적 고민도 함께 병행돼야 주류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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